[초대수필] ‘얼굴값’ 유감

세상을 살아가며 ‘얼굴값’을 제대로 하며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얼굴 생김은 별로이나 능력이 출중하여 남의 위에 군림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외모는 빼어나게 잘 났으나 능력이 부족하고 결점이 많아 여러 사람 앞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얼굴값을 못한다고들 한다.
용무가 있어 모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큰 회사답게 널찍한 사무실에 위쪽에는 부장이 자리하고 그 밑으로 과장, 계장들이 직원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데 그 중에 어느 과장의 외모가 특출하게 뛰어나 눈에 확 들어왔다. 순간 부장과 자리를 바꿔 앉았으면 참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관청에 갔을 때도 나이 지긋하고 잘 생긴 분이 결재 판을 들고 새파란 상사 앞에서 굽실거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두 사람이 서로 바뀐 위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순전히 외모만 보고 느낀 점이다.
미국 대통령 링컨이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 해서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膾炙)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책임소재를 말한 것이지 지성이나 감성까지 내포된 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태어난 환경과 수양에 따라 인품과 외양이 많이 다른 것 같다. 같은 수종의 나무도 기후와 토양에 따라 모양이 다르듯이, 동.식물은 외양을 보고서 좋고 나쁨을 판단하나 사람은 외모보다 내면에서 풍기는 교양미를 으뜸으로 친다. 그러기에 요조숙녀같이 보인 미인도 언행이 아름답지 못하면 정나미 떨어진다며 외면하고, 미남배우 뺨치게 잘 생긴 남자도 교양미가 결여되면 평가절하하지 않는가. 이렇듯 여느 것과는 달리 사람은 인격을 제일로 치면서도 ‘얼굴값’ 운운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출생시 외모와 내면이 조화롭게 태어나지 못하면 불행한 것 같다. ‘허우대가 멀쩡한 녀석이 저게 뭐람’이란 야유를 받는 이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나는 지금까지 외모로 인해 열등의식을 느껴 본 적은 없다. 허나 재능과 금전 때문에 겪은 수모는 비일비재하다. 어느 주석에서 있었던 일이다. 권커니 받거니 하다보니 거나하게 취했는데 어느 친구가 나를 뻔히 쳐다 보다 하는 말이 “너는 어째서 ‘얼굴값’도 못 하냐?”며 조소하지 않은가. 순간 취기가 확 달아나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가까스로 참았으나,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자고로 주석에서는 술값을 잘 내야하고 팁도 호기 있게 뿌려야 인기가 있는 건데 나는 그렇지 못했으니 얼굴값 못한다는 말을 들어도 쌌다.
‘돈도 써본 사람이 잘 쓰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했다. 적기 적소에 잘 써야 빛이 나는 것이 돈이다. 그런데 나는 항상 호주머니가 가벼워 호기 있게 써보질 못해서 체질화된 건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품인지 알 수 없으나 나에게는 노랭이 근성이 다분하다. 그리고 나는 머리가 좋지 못해 공부를 노력으로 했는데 돈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으니 공부인들 제대로 했겠는가. 그래서 기초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관계로 어느 모임에서 한 친구가 나에게 용비어천가의 어떤 구절을 물었으나 모른다고 했더니, 글을 쓴다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며 면박을 줘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톡톡히 당했다.
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동료들과 길을 가다보면 외국인들이 유독 나에게 다가와 ‘영어를 아느냐, 일어로 대화할 수 있느냐?’고 물어서 나를 난처하게 했다. 사실 나는 외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실력이 없다. 그런데 외모로 봐선 내가 알 것 같아 그랬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등골에 땀이 나는 비애를 느끼곤 했다.
이와 같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나는 겉과 속의 균형이 맞지 않게 태어난 얼치기란 생각이 들어 부모를 원망하다가 조물주도 원망하는 공상의 나래를 펴기 일쑤였다. 만일 내세에 또다시 인간으로 환생한다면 추남도 좋으니 좋은 부모 밑에 영특한 아이로 태어나 이 한을 꼭 풀고 싶다는 염원을 해본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머리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밥상머리에서 혼기 찬 자식들에게 ‘껍데기 무용론’을 역설해 가며 2세를 위해 배필은 외모보다 머리 좋은 처자를 택하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출생 시 재복(財福)이나 재능 중 하나만 타고 나도 그게 바로 큰 복이다. ‘귀신도 부린다’는 돈이 있으면 만사가 뜻대로 될 것이고, 모사 장량 같은 머리의 소유자라면 세상이 자기 손안에 있을 터이니 아니 그러하랴. 그러나 세상은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건데 전부가 잘난 사람들만 있으면 필시 지금보다 사악한 세상일 터이니, 나는 지금 ‘얼굴값’ 유감이 빚은 과대망상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 ‘얼굴값’ 유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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