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반의 급속한 서구화와 더불어, 최근 질병의 발생 양상 또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는 유방암이 우리나라 여성암 중 가장 빈도가 높은 암으로 올라섰습니다. 유방 전문의로서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을 진찰하다 보면, 종종 안타까운 경우들을 접하게 됩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30세 중반 여성분이 출산 후 6개월째 모유 수유 중에 가슴에 혹이 만져져 내원하였습니다. 환자분은 몇 개월 전부터 혹이 만져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수유 중에 모유가 뭉친 것으로 짐작하고 지내셨다고 합니다.
유방 초음파 검사상 혹은 이미 7cm 이상으로 커져 있었고, 내부에는 양성 종양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의심쩍은 소견들이 보였습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쌓은 유방 전문의들은 유방 초음파 및 유방 방사선 촬영술 등의 기본적인 검사 소견만으로도, 혹이 암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인지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애처로이 마냥 눈앞에 아른거려, 제 판단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총생검술이라는 조직검사를 시행하였습니다. 이틀 뒤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유방암 이라는 병리결과지가 책상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우선 환자분이 놀랄 것을 우려하여, 남편분과 먼저 통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간혹 불행이 겹쳐오기 마련인가 봅니다. 남편 분도 현재 사업상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화기를 통해 아이 엄마의 유방암 진단 사실을 전하는 마음이 큰 죄를 짓는 듯이 무거웠습니다.
다음날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안고 진료실에 내원하였습니다. 철없는 아기는 엄마 품에서 바동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사업으로 힘겨운 상황에 아내와 아기 걱정이 더해지는 듯 상기된 얼굴을 애써 감추며 아내를 위로했습니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아기 엄마는 놀랍게도 본인보다도, 힘들어 하는 남편에게 짐이 되는 것을 먼저 걱정했습니다.
많은 유방암 환자들을 봐왔기에, 유방암 진단을 받는 환자분이 오히려 가족들을 위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깊은 부부애가 앞으로 유방암을 극복해 나가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환자분을 통하여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방법을 하나 배우게 됐습니다.
유방암은 이제 진료실에서 드물지 않게 접하게 되는 질환이 됐습니다. 특이한 점은, 위에서 말씀 드린 예에서와 같이, 우리나라의 유방암 환자들의 경우 30~40대의 젊은 환자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구에서와 같이 50세 이후에 유방검진 사업을 도입하는 것은 우리나라 실정과 맞지 않습니다. 적어도 30세에는 유방암의 기본 검진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40대 이상 여성분들을 대상으로 무료 검진 사업이 도입되어, 유방암의 조기 진단에 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유방암은 조기 검진과 더불어 예방이 무척 중요합니다. 1년 이상 모유 수유를 지속한다면, 아기에게도 좋을 뿐더러, 엄마 또한 중요한 시기에 유방암의 중요 원인인 에스트로겐의 공격으로부터 보호 받게 됩니다. 기름기가 지나치게 많은 식생활은 유방암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균형 잡힌 식단과 적절한 운동으로 비만을 예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기 발견된 유방암은 완치가 가능합니다. 또한, 조기에만 발견된다면, 내시경 수술의 발달로, 수술 후에도 흉터 없이 유방 모양을 보전할 수 있습니다.
예방적인 조치들과 더불어 나이에 맞는 정기적인 유방검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