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수필/갈증

목이 말라 물을 들이 키고 싶은 느낌만이 갈증은 아니다. 무엇이든 알고 싶은 지적(知的)인 갈증은 목이 타는 갈증보다 오히려 더할 때가 있다. 요즈음 문학공부를 하면서 몹시도 지적갈증을 앓고 있다. 일종의 앎에 대한 갈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모르던 것을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고 지혜와 인격을 다듬어 가는 과정은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희열의 경지라 해도 좋을 것이다. 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배운 것을 다시 익히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 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라고 한, 공자의 말씀도 이제는 알 것 같다. 공부란 인생의 가치를 높여주는 디딤돌이요, 판단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기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안에 잉태하기 시작한 글 쓰고픈 욕망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나를 옥죄어왔다. 그래서 예전에는 그냥 건성으로 지나쳐버리던 일도 하나하나 눈 여겨 관찰을 하게 되고 또 그 의미를 찾는 습관에 젖다보니 새로운 번뇌가 일기 시작했다. 언론사 기자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주제에 이 무슨 망발(?)인가 싶어 아예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더라도 여기서 주저앉아서는 안 되겠다는 오기 같은 자존심이 생기면서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끈질긴 집념이 나를 더 강하게 이끌어주고 있다.
내 안에 알고 싶은 욕망이 새롭게 용솟음치고 있다. 앎이 많은 사람일수록 부드럽고 겸손하며 또한 견고한 내실이 가득 차있음도 알게 되었다. 많은걸 수용할수록 모나지 않고 둥글어서 편안함을 주고 있다는 것도 새로운 깨달음이라 해야겠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서 신체 건강한 사람처럼 마음의 양식이라는 것도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러므로 외부에서 밀어닥치는 그 어떤 사고(思考)와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에도 보다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앎의 힘일 테니까.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두메산골에 있는 작은댁에 갔을 때의 일이 기억난다. 찻길이 닿질 않아 십리이상을 걸어 가야했다. 그 날은 눈이 많이 내렸다. 몇 굽이의 산을 넘어 간신히 도착한 작은댁에서 그 날 밤을 지냈다. 한 밤중 작은집 뒷산에서 느닷없이 ‘뚝! 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서 많은 것을 상상하게 되었다. 무슨 소리일까, 산 속에 숨어 있던 간첩은 아닐까? 아니면 흉기를 지닌 도둑은 아닐까, 산이 깊어 그 소리는 메아리로 울려 퍼져 긴 여운을 남겼다.
산짐승들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소리일 것이라는 아버지의 유추해석(類推解釋)은 들었지만 그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다. 다음날 뒷산에 나가보니 하얀 속살을 드러낸 나뭇가지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밤새 소리 없이 내려 쌓인 그 부드러운 눈송이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찢겨지면서 토해낸 나무들의 비명 소리였던 것이다. 거기서 나는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이유제강(以柔制剛)이란 뜻도 새롭게 배우게 되었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을 얻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푸근하다. 많은걸 얻을 것 같은 충만함이 벌써 나를 흥분시키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선 많은 것을 생각하고, 읽고, 쓰는, 습작과정을 통해 자신을 가다듬어 가는 행위요, 무엇이든 표현하지 않고는 못 배길 숭엄한 마음의 지침(指針)이다. 이제부터는 모든 사물을 소홀히 흘려버리지 않는 마음의 자세와 생활의 지혜를 습관화시켜야겠다. 그래서 나를 따라다니는 그 그림자를 뜨겁게 끌어안고 세상 끝 날까지 동행하려 한다.  
많은 것을 탐구하고 많은 것을 수용하고 많은 것을 활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을 쓰려면 항상 사유(思惟)의 창고를 가득 채워야 할 것이니 지난 세월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저장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연륜이 쌓일수록 세속적인 직위의 권위자보다 기품 있는 사람에 대한 매력과 관심이 더 깊어지게 됨은 나만이 느끼는 소회(所懷)일까.
무료한 사유의 뜰을 서성이다보니 내 유치한 상념과 언어의 알갱이들이 반색을 하며 내 가슴을 저미듯 파고든다. 나는 그것들을 안고 내 안에서 새로운 잉태를 준비해야겠다. 또 하나의 갈증해소를 위하여...

이전화면맨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