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가 도착하던 날 엄마는 소녀처럼 기뻐했다.
얼마 전,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한 엄마 친구 분께서 보낸 각종 검정고시 서적들, 그것들은 엄마에게 있어 단순한 책이 아닌 꿈이었다.
내 방 한구석에 얌전히 세워져 있던 상은 다시 거실 한 구석에 펴짐으로써 엄마의 훌륭한 책상이 되었다.
그날 저녁, 새로 산 학용품을 흐뭇하게 보는 엄마를 보았다.
그동안 지나쳐온 엄마의 못 배운 한이 그래서 더더욱 클 배움의 기쁨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소아마비 3급 장애인인 엄마. 불편한 왼쪽 다리는 세 살 때 앓은 열병이 남기고 간 지독한 흔적이다.
학교 다닐 적에도 체육대회나 소풍은 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엄마는 또래 친구들이 김밥 싸들고 꽃놀이 단풍놀이 갈 때 집에서 홀로 외로웠다 한다. 허나 열병의 후유증은 은근한 소외감으로 끝나지 않았다.
누구보다 총명했던 엄마에게 배움의 기회를 박탈해간 것이다.
불편한 몸으로 가뭄에 콩 나듯 오는 복잡한 버스를 타고 몇 십 분을 달려야만 있는 중학교에 통학할 수 없다고 판단한 외할아버지 할머니께선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의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엄마에게 초 졸이라는 멍에를 안겨주었다.
그렇게 열네 살에 꺾인 배움의 꿈, 엄마는 지천명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다시 펴려는 것이다.
중학교 검정고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려 친구 분께서 보내주신 책으로 독학중인 엄마.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틈틈이 열심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볼 때 마다 나는 스스로가 참 부끄럽다.
대한민국 고3이라는 나는 공부가 하기 싫어 만날 투정하고 게으름피우기 바쁜데, 엄마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글자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라니 .. ....
이이 인생의 수많은 시험을 치룬 엄마의 남들보다 한 발짝 늦은 중학교 시험을 조용히 응원한다.
검정고시 준비 외에도 문화센터에서 수필공부를 따로 하고 있는 엄마를 보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만족이요 자기행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공원 한 쪽에 뒤 늦게 철쭉 몇 송이가 피었다.
이이 피었다가 다 지고, 잎이 무성한데, 저들은 왜 다른 꽃들과 함께 피지 못하고 늦게 피어 있을까.
그래서 더욱 주목을 받는 저 꽃, 늦은 공부로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자신의 삶을 찾은 ‘그녀’의 모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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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09-02-16 21:46: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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