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가시자 벌써 봄기운이 나른하게 느껴진다. 봄을 타서인지 몸이 찌뿌드드하다. 몸살이 왔는가 보다. 이럴 땐 늘어져 있기보다 산에 갔다 오면 몸이 가벼워지리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런 경우도 정말 있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아침 일찍 산을 한 바퀴 돌아오면 하루가 상쾌했다. 그런 걸 기대하며 귀찮은 마음을 누르고 자주 가는 망우산으로 향했다. 같이 다니던 방울이 녀석은 어디 갔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찾아 나서기도 귀찮았다.
막상 집을 나서니 걸을 만했다. 그런데 산 중턱쯤 오르자 다리에 힘이 풀리고 으슬으슬 오한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몸으로 나선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이곳까지 오른 이상 어쨌든 한 바퀴 돌아서 가야겠다 하여, 얼마 전에 친구와 함께 갔던 옆길로 접어들었다. 위로 계속 오르면 늘 다니던 길이다. 하지만 식은땀이 흐르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더 가까운 길을 찾아 샛길로 들어섰다. 어림짐작으로 풀숲을 한참 더듬어 가다 보니 이게 웬일인가, 길이 끊겼다. 이른 봄의 찬 기운에 아직 잎은 돋아나지 못하고 엉성한 넝쿨만 엄부렁하다. 나는 그만 골짜기에 갇혀버렸다. 어질어질 하며 몸살기가 온 몸에 퍼져온다. 그냥 덜퍼덕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다.
언젠가도 친구와 이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취나물을 발견한 때문이었다. 한 때 취나물을 뜯으려고 강원도 철원, 백골부대도 더 지난 곳으로 다녔는데 서울 망우산에 취나물이라니, 우린 흥분했다. 유혹하듯 드문드문 자란 취나물을 따라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다시 위쪽으로 올라왔는데 산길이 낯설었다. 어디서 어긋났는지, 이 등성이 저 등성이로 오르내려 보았지만 우리가 찾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대낮인데도 인적도 없고 산 속은 어둑했다. 갑자기 무서워져서 공연히 ‘야호’만 외쳐댔다. 그때는 그래도 몸이 성했고 친구와 함께 있어 재미도 있었다. 길을 찾아 오르내리다 옛 성도 보았고, 산꼭대기에서 헬리콥터장도 보았다. 한강 너머로 드넓게 펼쳐진 구리시를 바라보며 산등성을 타고 내려오니 워커힐 옆길이었다. 우리는 그때 망우산을 우습게보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아니, 명산 부럽지 않게 훌륭하다고도 얘기했다. 나는 그걸 깜박 잊었다.
어쩔 수 없다. 오던 길로 되짚어 나갈 수밖에. 지름길로 가려다 오히려 산 속을 헤매야 하다니 매양 어리석은 내 판단에 짜증스러웠다. 안간힘을 쓰며 다시 길을 찾아 나오는데, 밝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편안하게 자리 잡은 무덤이 안온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감미롭게 내려쬐는 봄 햇살 속에 여유롭게 버티고 앉은 무덤은 위용이 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안락과 휴식의 편안한 보금자리로 느껴졌다. 모든 고행을 마감한 안식이 그 곳에 깃들어 있었다. 열에 들떠 천근같은 몸을 끌고 산 속에서 헤매야 하는 나는, 중단할 수 없는 외로운 고행일 수밖에 없다. 나는 어쩌다 오늘 이 산 속에서 부단히 헤매야 하는가, 더구나 앓는 몸으로 말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 밑바닥에서 허무를 동반하고 엄습해 왔다. 그러자 돌연 햇볕이 사그라져 가며 무덤가에 습기 찬 정적이 돌았다. 갑자기 밀폐된 공간이 머리를 스쳤다. 순간 나는 벌떡 일어섰다. 언젠가는 나도 멈춰 있으리라. 시간은 내게 무한정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운명에 넋 없이 끌리듯 정신없이 발을 휘적거리며 길을 찾아! 그곳에서 한참을 빠져 나왔다. 등줄기에 흘러내린 식은땀이 축축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거뜬했다. 몽롱하던 정신도 맑아오며 뇌리에 무엇인가 희미하게 인식되어 왔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때로 힘겨워도 인생은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몸살쯤이야, 힘을 내자. 따스한 햇살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에 다정하게 스며들었다.
충남 천안 출생
1998년 중랑백일장 입선
2002년 동아일보 투병문학 입선
수필동인 글빛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