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본다 불암산에서
안 재 식
아버지는 바다였다
바다의 속내를 알고 사랑하게 된 아버지
그 바다는 슬픔의 바다였고
아버지도 그 아버지의 바다를 찾아 헤맸다
밤하늘에 폭죽을 피워 올리듯
서둘러 불꽃을 사르는 오월의 불암산을 오른다
단애의 벼랑을 이룬 정상에서
열두 살 소년의 두 귀를 토끼처럼 들어올리던 선생님
-보이지? 보이지?
-어디요? 어디요?
-안개가 바다를 숨겨놨구나
그때는 불암산이 아주아주 작아 보였는데
오늘은 태산이 되어 요리조리 가로막는다
아까부터 좇아오던 낮달이 창백하다
걱정이 되는가 보다
치마바위를 들추고 앉아본다
배꽃이 환장을 하던 저 들녘
마들평야에는 온통 토끼장일 뿐
켜켜이 가로지른 공간에
저마다 만든 섬들이 제자랑 한창이다
삶의 추위가 지나간 자리마다 생겨난
半百의 나이테를 헤아린다
새까매진 속내를 감출 길 없다
그래 선생님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어
오르자 오르자 또 오르자
오늘은 안개도 없잖아 바다가 보일 거야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
불암의 바위산을……
봄날은 간다
안 재 식
단단했던 동아줄
한생이 꺼져가는 찰나,
실낱같은 꿈마저
휘파람에도 너풀거리는 촛불이어라
만남과 이별, 사랑과 미움,
얽히고설킨 인연의 흔적들……
가슴에 내리는 눈물싣고
강으로, 바다로 흘러만 가네
남겨진 이들은 이제야 ‘돌아서 걷기’를 하고
어차피 인생은 연극이라며
순간, 한순간의 소중함과
그가 남긴 주마등을 이야기하네
그래, 봄날은 회한만 남긴 채
이렇듯 숨가쁘게 달려가고
그의 종점을 지켜보며
어느새 달려가고 있는 나의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