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스여성병원 제1회 출산기 공모전 수상작
아가야, 세상의 중심은 바로 너란다
우수상 정은진 중랑구 신내동 건영아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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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출산휴가가 시작될 때만 해도 정말 신이 났다. 사실 아가를 만난다는 기쁨보다는 단순히 남들 일할 때 놀 수 있다는, 일종의 짜릿함과 일로부터의 해방감, 간만에 갖는 휴식이 주는 상쾌함 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나는 해방감에 젖어 시간을 흘려버릴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출산 휴가를 받으면 해야 되는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나의 행복감은, 초조함으로 점차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친구나 주변 사람들이 보통 38주에 낳았을 뿐 아니라 출산휴가도 3개월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산모들이 쓴 출산후기를 접했기 때문에 출산 몇 주 전에는 이슬이라는 것이 비치거나 아랫배가 당기는 전조 증상을 알고 있었는데 그 비슷한 것도 전혀 느껴지지 않아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매주 일요일 이가영 선생님께 진료가 있는 날, 선생님은 아기가 아직 많이 내려오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예정일이 지나가고 있다. 나의 조급증은 상한가를 친 주식처럼 말릴 수 없이 치솟고 있었다. 나의 초조함을 눈치 채시고 유도분만을 하면 어떻겠냐고 하신다. 아기도 큰 편이고 예정일이 지나면 아기한테 별로 좋을 것도 없으니 또 윤달이 그렇게 걸리면... 결국 6월 20일 토요일, 예정일을 5일 지난 날, 유도 분만을 예약하고 말았다.
그렇게 초조하게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어머님 전화가 왔다. 어머님도 답답하셨는지 다니시는 절의 스님께 연락을 해 보셨나보다. 그런데 스님 말씀이 토요일쯤에 아기가 알아서 나올 테니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유도분만 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그리고 그 토요일이 태어나기 참 좋은날이라고.
‘아니 토요일이면 이제 이틀 남은 건데 지금은 진통도 이슬도 없는데, 그리고 아기가 알아서 나온다니... 참.’ 금요일 저녁 짐을 싸놓고 10시쯤 자려고 누웠는데 이상한 기분이 감돌았다. 아랫배가 살살 아픈 것이다. 혹시 이슬이라는 것이 비치지는 않았는지 화장실도 가 보았지만 이슬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혹시 가진통? 내 머릿속에는 온통 스님 말씀뿐이었다. 어머님께 들었을 때 그 묘한 느낌, 정말 실현되는 걸까? 제발 그렇게 되길...
진통이 느껴질 때 마다 나는 마구 신이 났다. 우와 그렇게 기다리던 진통인가보다! 그런데 말 그대로 가진통, 불규칙적인 진통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세게 와야 확실할 것 같아서 거실로 나와 다시 오리걸음, 고양이자세 등을 반복했다. 다행인지 통증이 점차 거세졌다. 새벽 3시를 넘어가니 정말 참기 힘들어졌다. 조금 더 견디다 보니 식구들이 하나둘 일어난다. 아침을 억지로 먹었다. 9시까지 기다리자는 의견을 무시하고 나는 병원 응급실로 갔다.
병원에 가니 친숙한 이가영 선생님은 보이지 않고 키가 큰 선생님만 계신다. 명찰을 보니 서영훈 선생님. 견디기 힘들어서 왔다고 하니 내진을 해 보신다. 그런데 1cm 도 안 열렸다고... 나는 그냥 입원 수속을 밟았다. 그리곤 촉진주사라는 것을 맞았다. 정말 이전의 고통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이 고통의 끝은 어디일까... 정말 지독하게 끈질긴... 다행히 자궁문은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맞은 무통주사. 이놈은 정말 시원한 청량제, 그 이상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 난 베드에서 뒹굴뒹굴... 그리곤 수간호사님의 말씀, 머리가 보인다고. 그때 엄습해 오는 두려움, 설렘, 떨림... 아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곤 우르르 들어오는 사람들, 머릿속은 깜깜, 안 돼 그래도 호흡하자, 연습한 그 호흡...
이제 시작이구나 생각하고 몇 번 푸시업을 하는데 다섯 번인가 여섯 번 만에 아가는 홀랑 나와 버린다. 아 그때 그 개운함은 정말이지... 그것은 단지 아가를 낳았다는 기쁨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리곤 나에게 보여주신다. 그 빨간 핏덩이를. 아 쭈글쭈글하고 빨간 고놈... 내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흘렀지만 난 또한 웃고 있기도 했다. 고놈이 딱 봐도 이미 내가 아는 얼굴이었기에... 난 성취감에 온몸이 전율했다. 정은진, 니가 드디어 해냈구나. 장하다.
나는 입원실로 옮겨지고 어느새 아가는 내 품에서 나오지도 않는 내 젖을 빤다. 사람 같지도 않은 그 놈이 그래도 살겠다고 내 젖을 쪽쪽 빨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진한 감동을 느꼈다. 작은 피부 접촉에서 느껴지는 그 따뜻함이 너무 고마워서 “누가 뭐래도 이 아이는 내가 꼭 지키리라....” 나도 모르게 그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아가야 조건 없이 이 엄마만 믿고, 아빠만 믿고 이 험한 세상에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그 스님의 말씀처럼, 아가야, 어쩜 그렇게 좋은 날에 엄마, 아빠 더 기다리지 않게 힘을 내서 나왔니? 고맙다. 하지만 앞으로 세상에 살면서 참으로 많은 험하고 무섭고 차가운 것들에 부딪치며, 넘어지며, 싸우며 살거야. 하지만 기억해라! 이 세상의 중심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너란다. 지금 겉모습은 작고 누구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힘없는 존재지만, 작고 아주 작은 네 안에는 무궁무진한 힘이 있다는 것을. 그 긴 시간을 견뎌내고 그 따뜻한 곳에서 이 무지의 곳에 태어난 것, 그것 하나만으로 너는 신이다. 너는 우주다. 아가야... 너를 본 순간부터 아니 엄마 배속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너를 너무 사랑하게 되었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