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롱베이와 베트남 여인의 돈가잉

하롱베이와 베트남 여인의 돈가잉

                                                                            이미서

 

 

 하얀 꽃 이파리들이 허공으로 날리듯 긴 생머리를 날리며, 농(N?n l?)을 쓰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여인의 자태가 아름다운 나라!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노이바이(noibai)’ 공항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여행기간 중 베트남 여인의 깊고 아리따운 모습은 상상 속 이미지에 그쳤을 뿐! 눈에 담아오는 일은 실패에 그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다도해와 같은 의미를 지닌 ‘하롱베이’ 여행길에, 그곳 현지인들의 생활방식과 일상에 관해 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모실 때 상주가 뒷걸음질로 장지까지 따라가는데, 혹시라도 다시 살아나실지 몰라서 최대한의 시간을 벌고 있다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다. 도심에서는 주로 묘를 옥상에 쓰고 아침저녁으로 참배하며, 시골에서는 부모가 가장 많이 가신 곳에 묘를 쓰는데 대개는 주로 농사짓던 논이 된다고 한다. 베트남의 여성들은 평생 일에서 해탈하지 못하고 그늘진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자식들이 엄마를 무척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놀랍게도 베트남에는 어머니날이 1년에 세 번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날을 제외한 362일은 남성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성큼성큼 걸어서 장지에 간다고 하니 베트남 여성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차창밖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여느 한국의 시골 모습과 비교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농촌에 일하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이 여자이며, 남자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일할 때 여자들은 고깔모자((N?n l?))를 쓰고, 남자는 둥그런 모자를 쓰는데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머리가 전부 고깔모양이다. 대신 남자들은 삼삼오오 마을 어귀에 모여 있거나 조그마한 찻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여성들은 ‘돈가잉(Don ganh)’에 물건을 담아다가 내다 팔기도 하고 식량을 담아서 집으로 운반하기도 한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저울 같은 물건인데, 베트남 여성들이 어깨에 메고 자신의 골격처럼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이자 고난의 표시이기도 하다.

 하롱베이의 빼어난 장관에 정신이 결박당한 듯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내 의지가 아닌 물리적 구속이었다. 3,000개의 독립된 섬들이 무질서 속에 질서 있게 첩첩이 둘러싸여 있는 모습은 스펙터클 그 자체이다. 석회암의 구릉 대지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바닷물이나 비바람에 침식되어 생긴 섬과 기암이라고 말하지만, 지금은 그런 전문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온 감각이 마비되고 감각이 풀림과 동시에 살아 있음을 다시 느끼게 되면 그만이다. 이방인들에게 개방이 이렇게 쉬운 반면 이곳 여성들이 하롱베이에서 여유 자적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극소수에만 허락된 호사스런 외출이다.

 약소국가였던 베트남은 수천 년간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남편들이 전쟁터에 나가면 결국 자녀의 양육과 교육문제 등을 비롯한 집안의 모든 일을 여성들이 도맡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남편이 성치 않은 몸으로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받아들였다. 희생이라는 단어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나타내기에 부족함 없는 단어지만, 억척스러운 생활력으로 보자면 베트남의 어미들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어떤 처지에서도 낙천적이며, 삶을 끌어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고 강인하다. 하롱베이의 장엄한 모습처럼 산업화의 물살을 타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보며, 베트남 여인들의 삶도 어제와는 다른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뀔 것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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