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스여성병원 제1회 출산기 공모전 수상작
불혹. 그리고 첫 출산
인기상 김은선
동대문구 전농1동 152-42
분만 일시: 2009년 3월 8일 오후 6시 21분 성 별 : 남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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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7일 토요일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혼자 맞는 주말... 예정일은 오늘이었으나 별다른 징후가 보이지 않고 앞뒤로 일주일 정도 차이가 난다 하니 난 그냥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나올 때 되면 나오겠지~ 하면서 여유로운 늦잠을 자던 나는 몸을 뒤척이다가 갑자기 무엇인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약간의 소변이 흐른 줄 알았는데, 설마설마... 몇 차례 반복적으로 느껴졌다. 병원으로 문의를 하니까 우선은 병원에 방문을 해보라고 하셨다. 진료를 받았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양수가 터졌으니 입원 준비를 서두르라고 하셨다. 갑자기 내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 쳤다. 드디어 오늘 우리 행복이를 만나는구나! ^^ 두려움 반, 설렘 반.. 만감이 교차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들이 든다. 난 짐을 꾸려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혼자 가는 길이라 약간 두려웠지만 애써 씩씩한 척~^^ 차분히 미리 준비해 놓은 출산 준비 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회진하실 때 여쭈어 보았다. “언제쯤 아기를 낳을까요?” “새벽 5시쯤 낳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어서 흘러 새벽 5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저녁 9시가 지나자 서서히 진통이 잦아지고 말로 표현을 다 할 수 없는 진통이 시작되었다. 난 괴성을 지르고, 데굴데굴 구르며 벽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5주간 배웠던 감통법, 임산부 요가, 호흡법 등등을 아기 낳을 때를 대비해 틈틈이 배워 왔지만 이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머릿속은 하얗게 되었다.
남편은 일을 끝내고 다음날인 8일 새벽1시~2시쯤 병원에 도착했다. 누군가 옆에 있음에 조금 마음이 편해지고 안정감이 들었다. 새벽 4시쯤일까? 다시 의사 선생님께서 회진을 오셨다. 아기가 생각만큼 내려오지를 않았다고 하신다. 그래서 유도 분만을 하게 되었고, 유도 분만을 하는 약을 맞으면서 나는 화장실 소식이 오는 줄로만 알고 연신 화장실을 왔다 갔다 했다. 진통이란 것이 꼭 응가하고 싶은 느낌이랑 거의 똑같다. 항문에서 금방이라도 뭔가가 나올 것 같은 그런 기분.. 간호사 언니가 가만히 있지 말고 천천히 걸으면 아기가 조금 더 빨리 내려온다고 해서 걸어 다녀 보았다.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 힘이 들어 걷는 시늉만을 하다가 소파에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나는 새벽을 지새웠다. 나보다 늦게 입원한 임산부들은 하나 둘씩 무사히 출산 하고 병실로 옮겨가는데, 행복이가 더 내려오는 소식이 없는 나는 망연자실...
나는 뱃속의 행복이에게 “엄마랑 호흡을 잘 맞추자! 파이팅!!”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노산이지만 나는 나름 출산에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탄탄히 준비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행복아 한방에 가자!!” 그때 간호사 언니의 “힘주세요! 어머님!!” 그 말에 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힘을 주었다. 그렇게 몇 차례 힘을 주었을까? 내가 힘을 주는 방법이 틀렸는가 보다. 얼굴에 핏줄이 터져 팅팅 붓고 양쪽 눈의 핏줄도 터져서 완전히 빨갛게 충혈이 되었다. 몇 번의 힘을 주었으나 우리 무심한 행복이는 쉽게 내려오지를 않았다. 급기야 간호사 언니가 내 배위로 올라와 힘껏 눌러 대고, “힘내세요!! 조금만 더요.. 잘하고 계세요. 조금만 더요!!” 나보다 더 비지땀을 흘리신다.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 남편도 눈물범벅에 다리가 후들후들 기절할 듯 보여서 간호사 언니가 도리어 남편을 더 걱정하신다. 너무나도 수고해 주시는 간호사 언니를 봐서라도 난 더욱 더 힘을 주었다. 그러나...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나는 제왕절개를 해 달라 난리를 쳤고, 급기야 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나를 달래셨다. “이제껏 고생하셨는데, 한번만 더 해봅시다.” ‘그래. 하루 종일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제왕절개라니!! 너무 아깝지!!’ 난 우리 행복이를 자연분만으로 낳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난 다시 있는 힘을 다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힘들다고 흡입기를 시도해 보자 하신다. 그래도 안 되면 수술 들어가자 하신다. 그때 흡입기의 사용은 나에겐 마지막 지푸라기 끈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다른 분만실로 옮겨지고, 또 다시 정신없이 힘을 주었다. 흡입기는 총 3번을 시도 할 수 있다고 하신다. 한번, 두 번.. 그러나 행복이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3번째 시도에 난 모든 힘을 주었고 순간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핏덩이 행복이가 내 가슴에 안기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만났구나! 우리 행복이~!!! 지금도 그때 느꼈던 절절한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그 해맑게 바라보던 눈빛. 그간 느꼈던 나의 고통, 긴장, 두려움들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출산은 감동이다. 새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분명 축복 받은 일이다.
나는 불혹의 나이에 우리 행복이를 출산한 것에 대해 너무나도 감사하다. 불현듯 나와 똑같은 불혹의 나이에 나를 낳아 주시고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계시지만 만약 살아 계셨음 너무 좋아하셨을 텐데.. 만약 살아 계셨으면 출산에 경험을 한 같은 여자로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많은 의지가 되었을 텐데..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엄마가 너무 그립다. 아직은 초보 엄마라 모든 것이 서투르지만 나는 열심히 노력한다. 적어도 게으르지 않고 지혜로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 그래야 우리 행복이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존경받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