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랑문학대학
조 성 희
중랑문학대학 제5기 수료생, 소정문학동인
‘궁즉통(窮則通)’그 표현 그대로 어느 날 광고를 보았다.
「중랑문학대학 수강생 모집 - 중랑문화원」
수 년을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좀 더 젊었다면 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에 도전했을 텐데…….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에도 취직을 위한 실용 강의가 대세이다.
나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아직 식지는 않았나 보다. 광고를 본 후 등록을 결심하면서도 과연 빠짐없이 잘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3월 개강할 때 등록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며칠 지나면 마감된다는 말에 등록을 하였다.
5기 입학식은 생각보다 너무 화려해 좀 어색했지만 그래도 잘 적응해 보려고 애썼다. 글은 잘 못써도 교수님의 강의는 꼭 들어야 하니까.
사실 일반 문화센터 개념으로 일반적 문학 강의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왔었다. 그러나 안재식 지도교수님의 강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전문적인 강의였다.
나는 매주 강의를 들을 때마다 어느 명문대학교 국문학과에 출석하여 문학 특강을 듣고 있는 기분이다. 일 주일에 2시간이니까 3학점 정도는 될 듯싶다. 그렇다면 등록금이 얼마인가, 솔직히 내가 낸 수강료로 현역 시인의 문학 특강을 들을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있겠나. 또 제자가 되어 글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더욱더 기대할 수가 없는데……. 정말 좋은 데에 올 수 있었음에 스스로 놀라며 감사하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내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어떻게든 빠지지 않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나의 삶이 존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학기가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던 날, 사실 글 한 편씩 써오라는 숙제가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출석했다.
나의 실제 생활은 심신이 너무 괴로운 매일이었다. 주로 병원 가는 일이 일과였다. 방학 동안 교수님께 정말 장문의 편지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그 편지를 쓰지 못하고 강의실에 앉아 있으려니 너무 죄송했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감정이 북받쳐올라 2학기 첫 수업에서 나는 속으로 내내 울고 있었다. 서러움도 아닌, 문학소녀도 아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직도 문학 열정이 죽지 않았음을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나의 지친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어우러졌나 보다. 그날 내내 우울한 채, 교수님께 1학기 동안 감사 문자 한 번 드리지 못한 죄송스러움이 겹쳐 있었다.
1학기 몇 개월 수업을 들었으면 글을 써야 할 텐데……. 그러나 나의 실제 생활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매일이었다. 창작은 엄두도 못 내었다. 그렇지만 근간의 일들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깨 통증이 심하니 글쓰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올해 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몇 가지 일들로 인해 정말 힘들게 보내고 있다. 온몸이 상할 정도의 일들이 별로 해결되지도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그런 중에도 어느 날 저녁, 그동안의 일들이 글로 씌어져 잡문이라 할 수 있는 글을 그나마 교수님께 제출할 수 있었다.
9월 29일 ‘동시’강의 시간이었다. 몇 편의 동시를 감상하던 중, 정채봉 님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란 제목의 동시가 나왔다. 그 동시를 낭독하면서 낭독자는 울었다. 듣고 있던 우리도 모두 울었다. 나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과 함께 다른 여러 일로 인해 계속 울고 있었다.
동시에 나오는 한 문장,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고 고백한 시, ‘3년이 지나야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시인의 고백이 있었다 한다.
나는 거의 그런 억울함으로 심령이 쇠잔해가고 있음에도 그날 그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말 3년이 지나면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오후 교수님은 ‘소정문학창작실’을 오픈하였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의 열정에도, 능력에도, 실천력에도……. 마음이 있다고 모두가 후학들을 위해 실천에 옮기지는 못한다.
선배 문인들의 산소에 가서,‘본인의 글이 더 잘 씌어지기를 바라며,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이 본인보다 더 좋은 글 많이 쓰기를 빈다’는 교수님의 제자 사랑 열정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래저래 그날 나는 정채봉 님의 억울함에 동조해서, 교수님의 열정에 감동해서, 날은 흐리고 마음은 우울해서, 오후 내내 속으로 울고 있었던 것이다.
문학 탐방, 글감 찾기 산행, 나의 간절한 바람에도 여건이 여의치 않아 매번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같이 공부하는 열정적인 문우들의 눈동자에서 힘을 얻는다. 말을 해야만 아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면서도 나는 갈등하는 것이 있다. 글 쓴다고 나 자신에게 너무 빠져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에 게을러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위를 돌아보는 그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글을 통해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