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하나님 이태석 신부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읽고
한 할머니가 예닐곱 살 정도의 딸아이를 데리고 와 나병이 아니냐며 몸에 난 반점들을 보여주었다. 피부 신경 검사를 해보니 간단한 체부백선(무좀)이었다. 어머니에게
“다행히 나병이 아니네요. 축하합니다!”
라고 하자 기뻐할 줄 알았던 어머니가 아주 서운해 하며, 딸의 손을 잡고 힘없이 돌아섰다. 어머니 손에는 나환자들에게만 지급되는 강냉이와 식용유를 담아 갈수 있는 비닐 포대와 깡통이 들려 있었다.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전문 71p중에서)
이태석 신부가 봉사를 펼쳤던 수단은, 북부의 아랍계와 이슬람교도가 다수파를 차지하며 남부 흑인계의 기독교와 다신교 주민을 지배해 왔다. 남부 주민은 독립을 요구하며 무력항쟁을 계속해 내전으로 치달았으나, 1972년 에티오피아의 조정에 따라 남 북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부에 대폭적인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내전을 종식되는 듯 했으나 크고 작은 다툼으로 그러기를 반복하다 최근에서야 내전이 종식이 되었다. 날마다 총소리가 끊이지 않은 수단에서 이태석 신부는 그들에게 무엇을 더 줄까 무엇을 어떻게 해줄까 고민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으며 눈감을 때까지도 다하지 못한 숙제와 같이 여겼다. 톤즈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과 울지 않는 것이 보이지 않는 규율과 같이 각인되어 왔지만, 이태석 신부의 선종 모습을 지켜본 톤즈 사람들은 그 규칙을 깨고 말았다. 그는 영민하고, 지혜로웠다. 어릴 때 집 앞 성당에서 기타와 피아노를 독학했고, 의대에도 진학했다. 의대에 진학해 장학금을 받아 경제적 부담을 더는 효도도 못했고, 참척의 아픔을 어머니께 안겼지만, 훌륭한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척박하고 가난한 아프리카 톤즈로 의료와 선교 봉사를 떠나는 아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이태석 신부를 만난 것은 올 정월 하순께 문우들과 함께 정동에 있는 선재 미술관에서였다. 물론 서로 대면한 것은 아니고 나 혼자만이 ‘울지마 톤즈’ 라는 영화를 관람하며 그를 만난 것이다. 그저 별 탈 없는 일상과 만나며, 어제가 오늘같이 오늘은 또 내일로 이어지는 무미한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 이태석 신부의 삶은 사막에서 꽃을 피워낸 선인장과 같았으며, 동방박사가 발견한 저녁 샛별처럼 화안하게 다가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낙후되고 못사는 이유에 대해 그곳은 저주받은 땅이며, 근면하지 못한 민족성을 탓한다. 그러나 선진국의 기술과 문화는 지구의 오존층을 계속 파괴해 오고 있으며, 지구 온난화를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열악한 환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오염된 강물인줄 뻔히 알면서도 그 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그것은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가 창궐하게 되는 요인이 되며 아프리카인 다수의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톤즈로 건너간 그의 첫 번째 과업은 주민들과 직접 만들어낸 벽돌로 병원 건물을 신축했으며, 폐허가 된 건물을 개조해 톤즈 최초로 고등학교까지 갖춘 학교를 세웠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그 곳에 태양열 전지판을 직접 설치해 전기를 공급받았으며 그렇게 만든 귀한 전기로 냉장고에 백신을 보관하여 환자를 치료하는데 썼고, 남은 전력으로는 학교 독서실의 불을 밝혀 공부에 열의가 있는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그런가하면 태어날 때부터 몸에 음악이 내재 된 그곳 아이들에게 일일이 악기 사용법을 가르쳤고, 수단에서는 유일하게 35인조 브라스밴드를 결성하여 학생들에게 음악이라는 새로운 인생도 만나게 도와줬다. 그는 또 자신들이 한센병에 걸려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환자들에게 병명을 알려주고 그들이 모여 살도록 터전을 마련 해주었으며 발이 썩어 들어간 나환자들의 발모양을 각각 본떠 개개인의 발에 맞는 신발을 신도록 하는 지혜도 십분 발휘했다.
이태석 신부는 보통사람 천명이 할 수 있는 일을 지혜와 혜안 그리고 넘치는 열정으로 일구었고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그들이 만난 이태석 신부는 아버지이며, 선생이며, 의사이며, 성직자였다. 2008년 기부금 마련 차 잠시 들른 한국에서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48세의 나이로 그가 그토록 존경하던 신의 오른쪽 보좌로 떠났다.
사람들은 신부에게 의술로도 사람을 도울 수 있고,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들이 많은데 왜 그 먼 나라 아프리카까지 가서 선교를 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말한 예수님의 말씀이 맴돌았으며,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떠난 순간 그들이 바로 그들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유명 여배우 김혜자씨께서 아프리카에서 봉사한 후 펴낸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계 인구를 100명으로 축소시키면 50명은 영양부족, 20명은 영양실조이며, 그중 한 명은 굶어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비만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여인은 신에게 항의했다.
"왜 당신은 이 사람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건가요?"
그러자 신이 그녀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내가 널 이 세상에 보내지 않았는가?"
친구가 되어주실래요? 책 속에서 이태석 신부는 자신이 처한 삶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신께 감사와 존경을 표했으며, 그의 긍정은 톤즈 사람들에게 사막에서 핀 선인장 꽃처럼 고고한 삶의 향기를 널리 퍼트렸으며, 이태석 신부야 말로 신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시간 없어 보내 주신 선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