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빈 맘의 real mom's story

장’스여성병원 제2회 출산기 공모전 수상작

 

하빈 맘의 real mom's story

 

우수상 장유진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 현대APT)

 

분만 일시 :

2011년 08월 18일 
성별 :

여(박하빈)
체중 :

 2.78kg 

 

 

 

 


 

 

아기가 찾아옴
2010년 10월의 마지막 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신랑과 함께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밥 냄새가 싫어지고 아무렇지 않았던 거리의 향토적인 냄새조차 싫게 느껴졌다. 물을 먹어도 구역질을 하게 되고, 심한 입덧은 계속되었다. 결국 임신 5개월이 되어 한국으로 가기로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 도착하고도 아일랜드에서 출산해야 하는지 한국에서 출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다가 점점 힘들어지자, 안정감있게 출산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상봉동 토막이인 나. 그 동네에서 여성병원이 크게 들어서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고, 산부인과와 함께 조리원이 함께 있는 병원을 찾고 싶었다. 임신 5개월 때 찾은 산부인과. 더블린에서는 국가에서 산부인과 병원비를 보조해주는 대신 임신5개월까지는 초음파검사를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초음파검사로 태아를 만날 수 있었던 그때의 첫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씩씩한 심장소리와 아가의 손가락 마디마디의 모습, 확실하게 찍힌 초음파 사진 3장. 다시보고 또다시 보며 마치 이목구비가 누구를 닮았는지 보이는 듯 했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펼치고 있는 사진은 마치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손짓 같았고, 고국에서 느끼는 안정감도 더해졌다.

뼈저린 분만의 고통
직접 출산을 경험해보니, 얼마나 무섭고 힘든 고통과 함께 그 후의 몸 관리는 평생을 좌우하기에 내 몸이지만 내 몸 같지 않은 산욕기의 경험! 뼈가 흔들리는 산모의 몸을 겪어봐야 알 수 있었다. 건강 앞에서 국적이 무슨 소용인가. 한국에서 낳을 것인가 더블린에서 낳을 것인가 자체가 얼마나 모르고 생각했던 것인지.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산고의 고통 또한 모두 다르고, ‘이런 고통이야’ 라고 알려주셨던 분들의 경험담도 개인마다 각각 다른 출산의 시간. 내가 겪었던 출산의 경험. 그때의 시간을 되새겨 본다.
본격적인 분만이 시작됐다. 누워있던 침대는 변신을 한다. 상체부분은 올라가고 다리부분에 양쪽으로 날개를 펼치듯 벌어진다. 엉덩이쪽에 주사 한 대! 밑부분에 마취주사 한 대 맞았다. 그리고 절개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절개할 때 감각이 없다. 왼손에 촉진제를 꽂은 주사바늘 때문에 손잡이를 꽉 쥘 수가 없었는데, 머리를 배꼽으로 향하고 최대한 구부리면서 손잡이를 잡고 당기란다.
점점 힘들고 괴롭다. 복부를 도려내는 고통이 계속 된다. “하나, 둘, 힘!”이라는 소리에 맞춰 들이마시고 힘을 주되 입에서 공기가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다시! 다시 하나, 둘, 힘!” 그 소리와 함께 반복! 다시 반복! 머리는 배꼽쪽으로 향하여 들고 최대한 벌린 허벅지 안쪽을 잡고 당기란다. 간호사분이 갈비뼈 아랫부분에 힘을 실어 누르고 있고, 복부를 마구 주무르고 계신다. 악~! 소리도 못 낼 만큼 괴로움은 계속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은 이보다 더하셨으리라. 맘속으로  “주여~~~!!”를 외치게 된다. 그래, 지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죽도록 아플 때 소리를 지르겠지. 아프면서도 이보다 더 아파야 다 끝나겠지. 생각하고 있을 찰라! “마지막 초음파할때 아기가 몇 킬로라고 하셨어요?” 의사선생님께서 본인이 봐 주셨는데 담당분이 아니셔서 기억을 못하고 계시나보다. “3키로요.”(마지막 초음파로 검진했을시 실제 아기의 체중보다 많이 나왔다.)
“신랑분 뒤돌아 두 손 모으세요!” 신랑은 벽보고 두 손을 모으라는 말에 기도하라는 줄 알았다고 한다. “마지막 한 번 더~!”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분의 소리가 들린다. 때는 오후2시 10분. 무언가 뜨거운 물이 뭉클 흐르는 느낌이 있다.
“애~~~앙 ~앙~” 아기 울음소리가 나고, 신랑은 탯줄을 자른다. 다리에 경련이 온다. 나도 모르게 떨린다. 아기가 내 가슴위에서 한쪽 눈만 뜨고 바라보고 있다. 간호사분은 아기의 입을 가슴에 물려주신 후 “엄마 뽀뽀!” 하면서 내 볼에 아기 입술을 맞춰주신다. 아기발목과 내 팔목에는 2011. 8/18.   2.78kg의 여아라고 쓰여있는 분홍 팔찌를 끼워주신다. 공주님이다.

마음으로 끌리는 아기와의 교감
분만한 후. 밤새 잠을 설치고 깊은 잠이 올 줄 알았는데, 뒤척였다. 분만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처음겪는 분만 고통의 순간들이 그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첫 수유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정확히 눈이 뜨여지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냥 귓가에 아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것이 모성애일까?
모유수유실에서 아기가 빤히 나를 바라보았던 기억이 떠올려진다. 태어나서 세상에 적응하느라 흐느끼는 모습도 아직도 기억한다. 왜 흐느끼고 있지? 하면서 계속 마음에 걸리고, 계속 아기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해지더라. 간호사분께서 분만할 때 “아기는 엄마보다 배로 더 힘들어요.”라는 소리에 아가도 함께 고생했구나 싶어서 다독여주고 싶었다. 아기를 보는 순간. 세상을 다 갖은 느낌. 마음 한가득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된 것 같은 그런 마음.
아기 기저귀 갈아주는 것도 서툴고, 내 몸에서 모유가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유방마사지실에서 유선을 트여주기 위해 마사지 받고 상식도 알아가고 내 체질도 알 수 있어서 공부가 됐던 그때. 처음! 시작이 좋았다. 
아직도 정말 내 딸인가 싶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마음으로 끌리는 아기와의 교감. 그것이 핏줄인가보다. 이제 하빈이는 생후 74일이 되었다. 한숨자고 일어날 때마다 커가는 모습이 눈에 확확 보인다. 딸이었던 내가 딸을 낳고, 나는 이제 진짜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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