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손에서 얻은 병

2년 전의 일이다. 중학교 1학년 딸아이가,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연방 키득거림을 참지 못하고 있다. 무슨 책인가 슬쩍 다가가 보니 만화책은 아닌 듯했다. 궁금해 하는 나에게 아빠도 읽어 보라며 책을 내민다. ‘코 파기의 즐거움’이라는 빨간색 표지의 120페이지 분량의 책이었다. 평소에 코를 잘 파는(코딱지를 떼는) 나를 닮아 딸아이도 코를 즐겨 파는 취미가 있다. 언젠가는 자기 침대 머리맡에 코딱지가 잔뜩 묻어있는 벽을 보여주며 재미있다는 듯 웃던 적도 있었다. “그래 즐기려면 제대로 알고 즐겨야지!” 하며 호기심에 책을 받아들었다.
 작가는 1934년에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출생한 롤랜드 플리켓 이라는 여류 작가이다.
“코 파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인기 있는 취미다.”라고 시작되는 이 책은 코 파기 분야를 과장되게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아직 코 파기의 즐거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코 파기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30대 중반 이상의 연령층이면 흔히 ‘푸세식’이라고 얘기하는 재래식 화장실 문화에 조금은 익숙해 있으리라 생각된다. 화장실에 얽힌 한두 가지의 안 좋은 추억이나 웃지 못 할 미담도 있을 것이다. 산과 들 냇가는 신나는 놀이터이고, 산이나 밭에서 나는 열매나 농작물이 최고의 간식이던 시절이었다. 밤에 친구들과 서리를 나가 고구마나 무를 캐서 물에 씻지도 않고 풀이나 바지에 쓱쓱 문질러 먹어도 꿀맛이었던 때가 있었다. 비료가 없던 시절이라 가축의 분뇨가 섞인 퇴비나 인분이 거름의 전부였던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건강에 대한 아무런 상식 없이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한지라 성인이 되어서도 생활 속에서의 위생습관 즉, 외출 후 귀가해서 손 씻기, 식사 전 혹은, 용변 후에 손을 씻는 일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살아오게 되었다. 어쩌면 누구나 다 하고 있는 행위를 나만 하지 않고 살아온 것일까? 결혼 후에도 아내에게 조차 손 씻는 일에 대해 지적이나 잔소리를 듣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평소에 비염이 있는 나는 환절기 때가 되면 자주 병원을 찾는다.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으면   증세가 호전되는 듯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나 찬바람을 많이 쐰 날, 혹은 몸이 피곤하거나 술을 많이 먹은 날은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호흡하는데 지장이 많아 고생을 한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완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이비인후과 의사의 말을 들으니, 나로서는 그저 조심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한방 또는 민간요법 등을 써 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비염이 심할 땐 코로 숨 쉬는 것이 힘들어 입으로 숨을 쉬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 행위 때문에 기관지 천식 증세까지 얻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생로병사의 비밀’ 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병균이 사람의 손을 통해서 옮겨진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생활 속에서 손을 자주 잘 씻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바이러스 질환과 전이성(轉移性) 세균감염에 대한 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선진국의 많은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각 병실을 출입할 때마다 손을 씻고 환자를 진료하고 있고 국내 병원에서도 그런 추세라고 한다. 손을 씻고 환자를 진료하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의 질병 감염 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하니 손 씻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를 일부 뒷받침하는 근거로 연합뉴스(2002년 9월 30일)에 의하면 미국의 병원 의료진들이 병원 내 감염의 주원인인 세균의 확산을 막는 수단으로 비누나 물 대신 알코올 린스를 즐겨 찾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새 조사보고서가 나왔다고 한다. 미국 미생물학회의 한 모임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짧은 시간에 곧 건조되는 알코올이 비누나 물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위험스런 세균을 막아준다는 증거가 늘어남에 따라 의료인들이 비누나 물보다 알코올을 애용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알코올을 주원료로 한 린스 류가 세균 살균력을 높인다고 한다.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내내 얼굴이 화끈화끈 댔다. 그러면서도 연구에 몰두해 있다가 새로운 이론이라도 발명한 듯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손 씻기를 잘 하지 않는 내가 비염에 걸리는 건 당연한 일임을 깨달았다. 이런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는 나의 딸, 아들이 비염 증세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젠가 생각을 해 본 일도 있었지만 유독 나와 아이 둘만 비염 증세가 있고 아내에겐 없는 이유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세균이 손을 통해서 코와 입으로, 혹은 눈과 귀로 옮겨졌을까?
나와 아이 둘은 그날 이후부터 손 씻는 일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1830손 씻기 운동’이라고 해서 하루에 여덟 번 30초 이상 비누로 손을 씻는 것보다 더 철저하게 손을 씻었다. 물론, 코를 파는 행위도 자제했다. 자주 손을 씻다 보니 손이 건조해지는 증세까지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손 씻는 일은 멈추지 않았고 나의 비염 증세는 약을 쓰지 않았는데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호전되었다. 손을 자주 씻은 일을 시작 한지 1년 정도 지나고부터이다. 코로 숨을 쉰다는 것이 이렇게 편하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피부에는 피부를 나쁜 균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유익한 균과 함께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황색포도상구균이 상존한다고 한다. 황색포도상구균은 사람의 피부에 많이 살고 있는 세균이며,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염증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세균이라고 한다. 음식을 다루는 손, 특히 상처가 생기거나 화상을 입은 부위에는 황색포도상구균이 많이 증식하며, 이런 손으로 식품을 취급하면 이 세균이 식품에 침투하여 장 독소(腸 毒素)라는 성분이 분비되고, 이 독소를 섭취하면 심한 복통, 구토, 설사 등 식중독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식품 제조, 가공 종사자들은 손에 상처가 없더라도 식중독 예방을 위하여 수시로 올바른 손 씻기를 하여 손에 의한 오염을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보고서에 의하면 비누로 손을 잘 씻으면 병원균의 60%까지 씻어낼 수 있다고 한다.
 올바른 손 씻기란 손에 비누를 묻혀 거품을 충분히 낸 다음 흐르는 온수에 구석구석 씻어야 하며, 특히 손톱 주변과 손가락 사이를 잘 씻어야 한다. 주부들은 간혹, 손을 씻고 앞치마나 주방 수건에 닦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습관은 반드시 개선해야 하며 손을 씻은 뒤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면 수건 보다는 일회용 종이수건으로 닦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한다.

이전화면맨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