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스여성병원 제2회 출산기 공모전 수상작
장려상 강금란 (중랑구 면목4동 374-22)
장스에서 만난 최고의 행복
분만 일시 2011년 3월 15일 15시 32분
성별 남(김동혁)
체중 3.12kg
3월 13일 일요일
새벽 2시 갑작스러운 통증에 잠에서 깼다. 진통간격을 재보니 약 10분 간격이었다. 초산이라 일단 진통간격을 지켜보기로 했다. 진통이 7분이 되었다가 오히려 15분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약 10초간 누군가 배를 쥐어짜는 듯한 아픔이 지속되다가 또 말짱해지고, 10분 지나면 어김없이 아파왔다. 생리통과 전혀 다른 이 아픔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3월 14일 월요일
통증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신랑은 곯아 떨어지더니 코까지 곤다. 조금 밉다. 우유가 먹고 싶어서 신랑을 깨웠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우유를 사가지고 돌아온 신랑이 고맙기도 하다. 진통은 지금까지도 10분 간격이다. 진짜 지긋지긋 하다. 벌써 진통은 12시간을 훌쩍 넘어 18시간째 하고 있다. 병원에 갈까 말까 고민이 된다. 시간이 갈수록 아픔이 조금씩 심해지는 느낌이 든다. 간격은 여전히 10분이지만 아프던 시간이 20초, 30초 늘어나고 아랫배가 묵직한 느낌이 든다. 아이가 아래로 많이 내려간 느낌이다.
3월 15일 화요일 (출산한 날)
새벽에 배가 점점 아파온다. 신랑을 깨워 아침에 병원 문 열면 병원 가야겠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갈 수야 있지만 담당인 서영훈 선생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 출근 시간인 9시까지 참기로 했다.
오전 10시 병원에 도착하니 바로 진료실로 들여보내 준다. 서영훈 선생님이 내진을 해보시더니 자궁문이 3센티 열렸다며 바로 입원하자고 했다. 10분 간격의 고통이 점점 좁혀지고 있음을 느낀다. 관장을 했다.
오전 11시 가족분만실로 자리를 옮겼다. 진통이 점점 심해진다. 입에서 짐승같은 소리가 난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소리도 내지 않으려 해도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울부짖음을 듣고 간호사가 들어온다. "많이 아파요?" "네" 하니까 무통주사를 맞아야 하겠다며, 관을 통해 무통주사를 놓아줬다. 허리부터 발끝까지 차가운 느낌이 퍼지더니 약 15분 후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졌다. 나는 무통주사가 눈물이 날만큼 고마웠다.
오후2시 조금씩 약발이 떨어져 가는 느낌과 동시에 변을 보고 싶은 느낌이 든다. 화장실을 가봤지만 관장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아기가 밑으로 완전히 내려오면 이렇게 변보고 싶은 느낌이 든다던데... 설마 벌써 내려왔을까 싶다.
수간호사와 다른 간호사가 들어온다. "엄마 이제 힘주는 연습 할거예요" 내진을 한 뒤 양수를 터뜨렸다. 갑자기 엄청난 양의 물이 솟구친다. 몸속에 이렇게 많은 물이 들어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그리고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그동안의 아픔이 우스울 정도의 고통이 찾아왔다.
오후 3시 계속해서 힘주는 연습을 시킨다. 고통이 찾아올 때 마다 변을 보듯이 아래에 힘을 주라고 한다. 내 양 팔은 내 두 다리를 잡게 하고 고개는 배꼽을 쳐다보라고 하는데 말이 쉽지 고통 속에서 그 자세를 유지하려니 죽을 것만 같다. "힘 잘 줘야 애가 빨리 나와요. 엄마 계속 이렇게 아프고 싶지 않으면 잘해야 해요" 누가 그걸 모르나요, 정말 죽을 것 같은데... 힘 줄 때마다 옆에서 간호사가 머리와 몸을 잡아준다. 몸을 잡아줄 때마다 힘 주기가 조금 더 수월하고 안심이 됐는데 몸을 안 잡아주면 '제발 잡아줘'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상상 속에서의 아기 낳을 때, ‘나는 힘 줄 때 신랑 손을 잡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뒤 끙~ 하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랑을 쳐다볼 정신도 없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신랑에게 "만지지마" 라고 소리쳤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꺽꺽대며 울었다. 정신이 없다. 이 말 했다 저 말했다 하는 것 같아, "자기야 나 정신 좀 차리게 해줘" 신랑은 말했다. "곧 행운이 만날 수 있어. 자기야" 그 한마디에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다.
얼마 후 간호사가 들어와 분만실 침대를 변신시켜 다리를 올릴 수 있게 해줬다. 내 얼굴을 보더니 "엄마 벌써 얼굴 핏줄이 다 터졌네요" 라고 하신다. 힘 줄 때마다 얼굴에 힘이 안 들어갈 수가 없다. 눈을 뜰 수도 없다. 드디어 서영훈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언제나 안정감을 주는 표정과 말투... "엄마 할 수 있어요. 힘 잘 줘서 한 번에 갑시다"라고 하신다. 그래, 한 번에 해야지 하고 다짐했다. 침대 손잡이를 잡고 고개를 든 채 한 번에 힘을 주라고 한다.
3시32분 정말 죽을 듯이 힘을 줬다. 이윽고 아래를 뭔가 날카로운 것으로 자르는 느낌이 났고 마치 시냇물에 쓸려나오듯 뭔가가 좌르륵 나왔다. 울음소리가 났다. "남자아이 출산하셨습니다" 탯줄을 자르지 않은 채 내 가슴 위에 잠시 아이를 올려준다. 바둥거리면서 크게 우는 내 아들. 양수에 불어있고 머리는 고구마처럼 길쭉하게 늘어나 있다. 쪼글쪼글한 그 모습이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아이를 낳았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 고통은 거짓말처럼 끝이 났지만 지금 내가 꿈을 꾸는건가 싶다.
3월 16일 수요일
신랑과 시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아이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리려고 수유실로 갔다. 간호사분이 데리고 나온 동혁이. 너무 작다. 발찌에 쓰인 글을 한참 읽었다. "김선문, 강금란 3월 15일 pm3:32 3.12kg 52cm 자연분만" 읽고 또 읽고 내 팔목에 채워진 팔찌에 있는 같은 글과 계속 번갈아가면서 봤다. 젖을 물렸다. 처음으로 눈, 코, 입, 귀, 손, 발 모든 곳을 천천히 보고, 만져봤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이렇게 행복하고 흐뭇하게 내가 웃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출산 후 200여일이 지난 10월.
동혁이는 어느새 기어다니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준다. 지난 200일 동안 동혁이를 키우면서 종종 임신중이었던 10개월 동안과 출산하던 그 날을 신랑과 함께 떠올리곤 했다.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건 바로 장스여성병원을 택했던 것. 집에서 더 가까운 다른 산부인과도 있었지만 자연분만률이 높은 장스여성병원을 선택했고, 역시 그 결정이 탁월했음을 느낀다. 둘째가 생긴다면 다시 장스로 오고 싶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