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스여성병원 제2회 출산기 공모전 수상작
엄마고생 아가고생 ‘셋째도 반드시 장스에서’
장려상 김옥선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럭키아파트)
2011년 10월 7일 오후 4시10분 |
첫딸을 낳고 모유 수유를 하던 중에 둘째가 생겼다. 모유 수유 중에도 피임을 하지 않으면 임신가능하다는 사실을 꼭 알려드리고 싶다.
결혼 후 4년 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임신에 좋다는 한약에, 여러 가지 음식, 냉한 나의 몸을 따뜻하게 한다는 여러 가지 음식들, 반신욕, 헬스를 했고 마침내 불임전문병원에서 인공수정 2회, 시험관시술 1회까지 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그리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마음을 비우고 100일 새벽기도와 등산운동을 하던 중 첫째가 생겼다. 그만큼 임신이 힘든 체질이라 방심하고 있던 차에 둘째가 생긴 것이다. 첫째가 돌도 안됐는데 또 임신을 해서 주변 분들이 축하도 해주셨지만 걱정도 많이 하셨다. 하지만 난 아기 욕심이 많고 넷째까지 낳을 작정이라 임신이 기뻤다.
진통이 서서히 거세지더니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파온다. 침상에 누워서 조금씩 신음하고 있다. 내 베드는 벽 옆이었는데 벽지가 많이 뜯겨져 나가있었다. 아침에 병원에 와서 가운을 갈아입고 누워있을 때는 그게 왜 그런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느새 내가 손톱으로 벽을 긁으며 신음을 하고 있다.
내 신음소리를 듣고 수간호사 샘이 들어오시더니 “누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시나?” 하신다. 구리 장스는 여러 간호사 샘들이 모두 친절하고 숙련됐는데, 그 수간호사 샘은 정말 무섭지만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해 보인다. 첫째 낳을 때 분만실에 들어가서 힘주기 할 때 도와 주셨는데 호흡 잘 못하거나 힘주기 제대로 못하거나 다리 쫙 안 벌리면 완전 무섭게 혼내신다. 반면 힘주기를 잘하면 대박 칭찬해 주신다.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그런 간호사 샘 덕에 나는 작년 은수 낳을 때 분만실에 들어가서 힘주기를 잘해서 10여분 만에 순풍 순산하게 되었다. 그 수간호사 샘이 내진을 하자고 한다.
다리에 힘 안 빼면 이번에도 완전 혼날 걸 알기에 겁 많은 나는 아예 포기하고 ‘그냥 견디자’ 다짐한다. 내진을 하시면서 자궁문을 1cm에서 4cm까지 열어주셨다. 그리고는 “엄마 아픈데 잘 참네?” 하신다. 그 칭찬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 이후 찾아오는 폭풍진통! 나는 계속 해서 한 4분 3분 간격으로 벽을 긁고 있다. 그렇게 한 5분 흘렀을까.. 무통을 놔 주셨다.
수간호사 샘이 다른 간호사샘 한분을 시켜 내가 힘이 부족하니 배 위에서 아가를 밀라고 하셨다. 그러다 아가 머리가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어느덧 장비가 들어오고 내 밑으로 소독약인지 뭔지 차가운 어떤 액체를 한 가득 붓는다.(그래! 은수도 그 과정 다음에 바로 나왔다. 이제 울 둘째가 나오려나 보다)
지석봉 담당 원장님께서 들어오셨다. 아! 이제 낳는구나 싶었다. 내 생각에 담당의는 반드시 아기 낳기 직전에 들어오시는 것 같다. 다른 말로 하면 의사가 들어오면 100% 아기 나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살았다. 이제 내가 낳는구나’ 싶었다.
나는 막바지 진통을 죽을 힘을 다해 “끄응” 힘을 주고.......... 그런 과정을 서너 번 했는데 마침내 내 밑에서 뭔가 ‘쑤우욱’ 길게 빠지는 느낌이었다. “2011년 10월 7일 16시 10분 3.96kg 남아입니다.” 하셨다. 그러더니 어느덧 빠알간 아가를 내 배위에서 들고 보여주셨다. 나는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또 울기 시작했다. 사실 감격스러워서 라기보다는 아파서 울었다. 그렇게 계속 우는데 지원장님께서 “재워 드릴게요. 한숨 주무세요” 하셨다.
내가 잠든 사이, 무지 긴급 상황이 벌어졌었다. 갑자기 의사와 분만실에 모든 간호사 샘들이 아가는 돌보지 않고 모두 내 쪽으로 와 있더란다. 신랑 생각에 뭔가 위급한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았다고 한다. 의사샘과 간호사분들이 아기를 낳은후 나의 후 처치를 마친 후 담당샘께서 신랑에게 보여준 건 바로 내가 흘린 피였단다. 한 대야, 그것도 아주 큰 대야 한가득 내가 흘린 피가 있더란다. 자궁의 피가 멎지 않아 하마터면 수혈 받거나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야할 긴급한 상황이었는데, 자궁속의 피가 멎게 하는 봉합술을 긴급히 하셔서 피가 덜 나고 멎을 수 있었다고 한다.(지원장님 만의 노하우로...) 원래부터 빈혈인데다(임신기간내내 빈혈수치가 낮아 철분주사를 두 번 맞았다.) 아가가 3.96kg으로 너무 커서 출혈이 많았다고 한다. 그 긴박한 상황 동안 나는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자고 있었다고 한다.
마취가 풀려 깨어나니 내 옆엔 신랑만 남아 있었다. 깨어나서 나는 또 울기 시작했다. 내가 자연분만 했다는 감격과 아가가 아주 정상이라는 기쁨, 그러나 마취가 풀리면서 회음부와 자궁의 아픔과 신랑 외에는 이 아픈 순간에 아무도 내 옆에 없다는 서러움(나는 시부모님, 친정엄마 세분 다 일찍 돌아가시고 친정 아빠는 그날 늦게 오셨다)이 뒤섞여 나는 신랑 옆에서 서럽게 계속 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운 가장 큰 이유는 “나 많이 아팠다고, 나 정말 많이 아팠다고, 나 아픈 거 알아달라고” 그래서 그렇게 서럽게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신랑은, 대야에 한가득 쏟은 피를 보고 “마누라 죽는 줄 알았다, 아이 둘 혼자 키워야 하는 줄 알았다”며, “셋째는 절대 안 갖겠다, 다짐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많이 아팠고 힘들었으나 자식 욕심은 그치질 않는다.(내가 외동딸로 자라서 자라면서 그게 너무 싫어서 내 자식들에게만은 형제, 자매를 많게 해 주고 싶다.)
임신기간 10달 내내 운동도 안하고 먹고 놀고 해서 아가만 크게 키우고 게다가 빈혈까지 심각하고 저질체력이어서 힘주기도 무지 못하고 겁도 많은 내가 두 아이 모두 자연분만을 하였다. 바로 구리 장스의 지원장님과 노련한 분만실 간호사 샘들 특히 수간호사샘이 계셨기에... 장스 산부인과는 자연분만 비율로 볼 때 구리 남양주에선 단연 최고이고, 전국적으로 볼 때도 아주 높은 자연분만율을 가지고 있다. 자연분만 하고 싶은 산모라면 모두 구리 장스로 오세요~~~!!!
마지막으로 아가와 저를 건강하게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도저히 자연분만 못하게 생긴 나를 자연분만 할 수 있게 해주신 장스 의료진께 감사하며 셋째도 반드시 장스에서 낳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