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오셨네요~

장’스여성병원 제2회 출산기 공모전 수상작

또 오셨네요~

 

장려상 박은정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 금강펜테리움 1906동)

 

분만 일시

2008년 2월23일 오전 8시7분

(유석원-남-3.26kg)
2010년 2월15일 오전 6시19분

(유하람-여-3.21kg) 

 

 

 

 4살 남아, 2살 여아를 둔 34살 엄마입니다.

요 며칠 구리장스에 다니면서 예진하는 곳 책상에 붙은 ‘출산수기 공모’를 보고 애들 돌보느라 잊고 지냈던 그때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출산의 고통과 환희... 사실 지금 셋째 임신(6개월)중이거든요.
첫애 임신이 된 후 병원 알아볼 것도 없이 당연히 장스에 와야 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이 병원 앞 지구대에 근무 중이었는데 구리에선 여기가 최고라며 큰소리쳤거든요. 5개월까지 갈색출혈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지석봉 선생님께서 괜찮다며 담담히 말씀해 주셔서 평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주위 산모들 얘기를 들어 보면 겁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던데 전 항상 의연하게 말씀해 주시는 지 선생님 덕분에 신뢰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답니다.
출산 예정일 일주일 전,
2008년 2월 23일 새벽 5시쯤에 양수가 터져 밤 근무였던 남편에게 급히 전화해 무작정 대전으로 내려가려 차를 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무지할 수가 있을까... 생각하지만 그땐 친정에서 낳고 싶고 또 첫애는 늦게 나온다는 말에 대전으로 가려 했거든요. 차를 타고 토평 IC 근처쯤 갔는데 진통 간격이 5분으로 참을 수가 없는 고통에 장스에 전화를 하니 빨리 오라고 하더군요. 그 순간에도 갈등을 하다니, 이런...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남편의 머리채를 쥐어뜯고 싶었습니다. 5시 40분쯤 병원에 도착해 바로 분만실에 올라가 간호사언니의 지시에 따랐습니다. 세상에... 내생에 이런 고통은 처음 맛보았습니다. 정말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눈물도, 말 한마디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간호사언니에게 남편 왈 “저기,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혹시 요 앞 지구대에 오지 않으셨어요?” 그때서야 간호사언니 “어머, 맞아요. 면허증 땜에 며칠전에 갔었는데” 두 사람은 반갑다며 이런 저런 얘길 나누네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제가 잘 도와드릴 테니까, 조금만 참으시고 힘내세요. 제 얘기 잘 들으시고요.” 하며 조용한 음악을 틀어 주었습니다. 저에겐 그 음악이 고통과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친절한 간호사 언니 덕에 병원 온지 2시간여 만에 건강한 남자아이를 순산하였습니다.
입원실에 올라가 둘째를 출산한 산모들을 보면 왜 그리 부럽던지...
둘째를 낳을 계획이 있었기에 어떻게 또 이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할까, 방금 전 출산한 산모가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미리 걱정했습니다. 2박 3일 병원에 지내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편히 쉴 수 있고 매 끼니때 마다 나오는 식사가 왜 그리 맛있던지... 남편 또한 식사가 정말 맛있다며 일주일 이상 머물고 싶다고 말 할 정도였답니다.
그리고 정확히 2년 후.
예정일보다 2주 빠른 2010년 2월 15일 새벽 3시 40분, 진통이 오기 시작해 또 밤 근무였던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두 돌 얼마 안 남은 아들과 함께 차안에서 진통이 멈출 때마다 힘내서 아기 낳으려고 초콜릿을 연신 먹었습니다. 둘째여서 그런지 무슨 여유인지 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기름가득 채우고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분만실에 가서 침대에 눕는데 낯이 익는 얼굴, “어머, 또 오셨네요” 하는 간호사언니의 말에 자세히 보니 첫 애 때 분만을 도와주신 분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사실 서운하겠지만 남편보다 더 의지가 되었습니다.
“기억하세요?” 하고 물으니, “그럼요. 아기들이 모두 새벽을 좋아하나 봐요.” 하고 따뜻하게 말씀해 줍니다. 2년 전인데 첫애도 새벽에 낳은 걸 기억하게 있었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요. 저에 얼굴색 하나하나 살펴 주시고 힘을 낼 수 있도록 계속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친절한 간호사 언니 덕에 이번에도 병원에 온지 1시간 30분 만에 건강한 공주님을 순산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건강한 여자아이에요. 어유~손톱도 예쁘네. 손가락도 길어요.”
아들 녀석은 조용히 사탕을 먹으며 갓 태어난 동생을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분만실앞에서 엄마가 진통할 때 아프다고 소리치면 장난인 줄 알고 ‘아’하고 함께 소리 질렀다네요.
사실 그땐 아기를 만난 것도 당연히 기뻤지만 ‘아, 이제 끝이구나. 이제는 이 고통이 나에겐 없구나.’ 하며 기뻐했거든요.
주위에서 제 출산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아기를 둘 다 빨리 낳느냐, 체질이라는 둥 이런 말들을 합니다. 남들보다 짧은 진통시간이지만 정말이지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 뒤 따르는지 뼈 속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우주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사랑스런 아이들이지만 이제 두 번 다시는 출산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왜 이리 큰 복이 많은지요.
내년 3월 8일 예정일. 셋째 아이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셋째 진료도 지석봉 선생님이시구요. 여전히 자상하시고 진실되게 잘 살펴 주십니다.
저는 또 상상하며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2012년 2월 어느 날 새벽... 3층 분만실. 그 친절한 간호사 언니의 목소리를 듣게 될런지...
“어, 또 오셨네요.”
*간호사분의 성함을 잘 모르겠어요. 그땐 알았었는데. 이번에 가면 확실히 이름을 알아두고
 아이들 양이모로 지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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