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따사로이 개나리 봉오리에 내려앉던 날, 가벼운 마음으로 천안행 버스에 올랐다.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느긋한 마음으로 신문을 펼쳐들었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볕은 얼마못가서 나를 졸음으로 끌어당겼다. 어렴풋이 잠이 들려는데,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조용한 차안을 흔들어 놓았다. 조금 울다 그치겠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더 크게 울어 제쳤다. ‘잠을 자긴 틀렸다’ 싶어 다시 신문을 펼쳤지만 신경은 온통 아이에게로 쏠려 있었다. 멀미를 하는 걸까? 아니면 배가 아픈 걸까? 도대체 어디가 불편하기에 저 아이는 저렇게 우는 걸까? 아이 엄마는 얼마나 진땀이 날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자 신문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이 엄마의 심정이 되어 함께 걱정하고 있었다.
나도 아이가 어릴 적에 버스를 타고 시골에 내려 간적이 있었다. 혹시 멀미를 할지도 모르기에 비닐봉지도 준비하고 과자도 준비했다. 한 시간이면 가는 거리였지만 말 못하는 아이가 울어대면 대책이 안서기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느긋하게 앞쪽으로 자리를 잡고 아이와 마주보며 “우리 신나게 달려보자”고 이마를 마주 대며 속삭였다.
중간쯤 갔다고 생각되었을 때, 옹알이를 하며 까르륵 웃던 아이가 갑자기 칭얼대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가보다 생각하고 우유를 줘도 혀로 밀어내고, 잠이오나 싶어 등을 토닥여도 무작정 울기만 했다. 그렇다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업어주기도 그렇고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한 겨울인데도 내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난 그 때 아이의 불편함은 둘째고 조용한 차 안을 온통 흔들어 놓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이의 입을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간에서 내릴 수도 없는데,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는 더욱더 떼를 쓰며 울어댔다.
그때 뒷자리에 있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가 더워서 그럴지도 모르니 옷을 벗겨보라고 했다. 방법을 몰라 허둥대던 나는 이런 저런 생각할 여유도 없이 얼른 아이의 옷을 벗겼다. 그제 서야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언제 떼를 썼느냐는 듯 새근거리며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여기저기에서 걱정해주는 사람들만이 있었기에 난 당황스런 마음을 진정시킬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일어서서 고맙다고 큰소리로 인사 한 마디 하지 못하던 수줍음 많은 새댁이었다. 지금이라면 인사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내가 그 아주머니 나이가 되었는데도 나는 선뜻 그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서 걱정만 하고 있었다. 한 겨울이 아니니 답답해서 우는 것은 아닐 것이고, 젊은 엄마가 배가 고프게 두지는 않을 것이고, 아무래도 졸리거나 아니면 멀미를 하는 거겠지 나름대로 추측만을 하다 보니 아이는 어느새 조용해졌다. 아마도 잠투정 정도였나 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따라 버스에는 거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예전 생각이 나서 휘 둘러보니 억지로 잠을 청하는 듯한 사람들은 간간히 보였지만 다행히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에게는 모두 너그러운 듯하다. 천사 같은 눈망울에 화를 낼 수야 없지 않은가. 화(火)를 내기 보다는 걱정을 해주는 너그러움. 지금 이 순간에 나를 화(火)나게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아이의 눈망울을 바라보던 그 마음이 되어 바라보자. 그러면 훨씬 마음이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최복룡/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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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09-02-15 09:42: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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