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 ‘탁탁’ 불혹인 여자가 뛴다. 애써 단장한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아야하건만, 오늘도 여지없이 달리는 주인을 따라 옷도 머리도 같은 방향으로 달려간다. 내 동년배들 중에 이렇게 많이 달려 다니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어렸을 때 이렇듯 달렸으면 노트가 귀하던 시절 달리기 부상으로 공책 한 권 받았을 법 하지만, 달리기로 상 한 번 받지 못한 것을 오늘에서야 고백한다.
함께 수필 공부를 하던 s선생님은 어딜 가는 날이면 내 안부를 물어주신다. 속마음은 챙기지 않으면 늦으리란 것을 아시는 은근한 배려다. “아홉시 삼십분에 계단 밑에서 뵙겠어요.”
이렇듯 막무가내로 약속을 정해버린다. 시계를 들여다보면 충분할 성 싶다. 옷은, 향수는, 가방은 어떤 것으로 해야 할지 고민하다보면 시계란 물건은 야속하게도 나를 실망시키기 일쑤다. 외투의 단추를 잠글 짬도 없이 현관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신발을 신기전에 언제나 엘리베이터를 먼저 불러 나를 마중하게 한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언제나 친절한 것은 아니다. 날 기다리기에 지치면 3층에 다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바로 눈앞에서 배신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시계와 승강기 탓만 할 수도 없다. 그런저런 상황을 집어삼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달리기다. 얼마든지 빨리만 달리면 그들에게 앙갚음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걸어서 10분이면 족히 도착할 수 있는 곳에서 약속이 있는 날이면 시간이 촉박할 듯싶어 머리가 휘날리도록 달려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에 겨우 간신히 몸을 올려놓았지만 버스는 야속하게도 신호등이란 신호등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게다가 버스가 떠나려고 하면 또 다른 승객이 소리치며 달려온다. 아마도 나와 같은 맘을 가진 사람일 텐데 시간 지체 말고 어서 달려주었으면 하고 고대해본다. 그러나 친절한 버스기사님은 내게 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버스를 멈추고 이내 친절을 베풀며 겸손한 눈인사까지 건넨다. 그리고는 충분히 건널 수 있는 신호등 앞에서 얌전을 떤다. 빨강불에 멈춰선 신호는 좀처럼 바뀔 기미가 없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싶으면 한가득 짐을 실은 트럭은 거북이 운행으로 내 속을 시끄럽게 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무리 전속력으로 질주해서 약속장소에 도착해도 시계의 긴 바늘이 외면할 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목까지 차오른 숨을 헐떡거리면서 상대방의 시계가 빠르다며 괜한 트집도 서슴지 않는다. 그도 여의치 않을 때는 신호등이 고장인지 바뀌지 않더라. 대통령이 이 동네를 지나가는지 거리에 차로 가득하더라! 등등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시간을 최악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늘 불평하는데 일인자이다.’라고 말한 라 브뤼에르처럼.....·
이렇듯 시간관념이 없어서 난처함을 겪었던 일은 어른이 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항상 함께 하던 친구들과 강화로 떠나기로 한 여행에 한 시간가량 늦어 허둥대며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마침 약속장소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좀 전과는 다르게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으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는데, 친구들을 기다려도 도통 감감무소식이었다.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집집이 전화를 하게 되었고 그때서야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그때 나의 모습이 흡사 패잔병의 귀환과 같지 않았을까?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에 끌려 산다.’고 말한 J. 하비스의 말 때문만은 아니다. 요즈음은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중이다. 아니 아주 맘을 고쳐먹기로 했다. 하지만 오늘도 별 수 없이 뛴다. 그러나 오늘 뛰는 이유는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10분 먼저 도착하기 위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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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09-02-15 10:0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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