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핸들이며 안장이며 페달을 말끔히 닦아내니 자전거가 마치 출발선에 선 경주마 같았다. 시험 삼아 경보장치를 눌렀더니 어서 타라는 듯 ‘힝힝’거렸다. 그러나 나는 서둘러 안장에 올라앉지 않았다. 앞바퀴와 보조를 맞추면서 아주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을 바라보듯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책로 초입에는 높다란 옹벽이 있다. 옹벽 위로는 차들이 다니고 옹벽 아래에는 겨울만 제외하고 늘 꽃들이 피어있다. 여름에는 열창을 하는 소프라노 가수들처럼 칸나 가 정열적으로 피기도하는. 그래서 산책길로 들어서는 이마다 그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시선이, 늘 붉게 넘실대는 꽃밭을 건너 뛰어 곧장 옹벽에 닿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작 내 마음을 빼앗는 것이 옹벽은 아니다. 그것은 옹벽에 붙어 안간힘으로 기어오르는 담쟁이 잎들이다.
줄기는 묵묵히 잎을 밀어 올리고 잎은 또 묵묵히 거친 바람벽을 타고 오른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냉랭한 회색의 옹벽을 차츰차츰 푸르게 변화시킨다. 긴 여름 동안 쉬지 않고 벽에 색칠을 하지만 그러나 까마득하게 보이는 옹벽을 모두 푸른빛으로 덮기에는 담쟁이의 걸음은 너무 느리고 가을은 또 너무 빨리 달려온다.
어느 새 시월 중순이다. 담쟁이 잎들은 옹벽의 허리춤에서 걸음을 멈춘 채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은 제가 가지고 있는 물기란 물기를 모두 내어 말리고 있는 중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바삭바삭 말라가다가 찬비가 내리는 어느 날, 그것은 소리 없이 떨어져 내려 흙에 묻힐 것이다. 그리고 영하의 겨울이 지나 따스한 바람이 부는 봄 날, 제가 걸음을 멈춘 바로 그 자리에 더 생생하고 푸른 잎을 밀어 올릴 것이다.
자전거에 기대어 담쟁이의 가을을 바라보면서 나는 또 하나의 가을을 떠 올린다. 우리 모두가 겪게 될 인생의 가을이며 특히나 이즈음에 C언니가 맞은 가을이다.
늘 온화한 모습에 근심이라곤 찾아 볼 수 없던 언니가 이 가을을 맞아 서글픈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언니와 함께 소슬 바람이 부는 거리를 잠시 걸을 기회가 있었는데 ‘빈 둥지 증후군을 아느냐’며 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얼마 전에 내가, 자녀들 모두 짝지어 살림을 내주고 내외가 오붓하게 사니 언니는 다시 신혼시절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말에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하던 언니였는데…….
온 정성으로 사랑하던 대상이 갑자기 자신의 영역 밖으로 멀어진 것 같은 느낌. 다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잠 못 드는 가을밤, 뻥 뚫린 가슴에 찬바람이 쓸쓸히 불어들면 서글프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나는, 언니의 가을은 곧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한다. 그는, 그가 사랑할 대상을 아직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니 곁에는 수필이라는 좋은 친구가 있다. 늘 잔잔한 음성으로 진솔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젊은 연인이 옹벽 쪽으로 올라온다. 그들이 내 옆을 지날 때 바람에 헝클어진 연인의 머리카락을 서로 다정하게 쓸어 올려주며 그들은 나를 지나쳐 단풍나무 터널로 접어든다. 자전거와 나는, 잠시 C언니의 생각에서 빠져나와 두어 걸음 더 길가로 물러서야 했다.
단풍나무의 길 끝으로 멀어져 모습이 가물거리는 저 연인들이나, 담쟁이와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는 나나, 이 가을날의 C언니처럼 누군가에게 ‘빈 둥지 중후 군이란 것을 아느냐’고 말을 건네면서 먼 하늘로 시선을 둘 날이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맞을 인생의 가을날에 나는, 물기 한 방울마저 아무 미련 없이 비우는 저 담쟁이를 닮고 싶다.
내가 한눈파는 동안 말없이 기다려 준 자전거의 안장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쓰다듬고는 서둘러 페달을 밟는다. 지금, 내가 사랑해야 할 이들이 있는 곳으로,
(한맥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회원, 글나래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