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주민센터로 바뀐다고 한다. 인구를 기준으로 동을 통합하는 수준을 넘어 이름까지 바꾸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를 사는 느낌이 피부에 와 닿으면서 뒷맛이 씁쓸하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오던 동사무소라는 명칭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 게 아니다. 내용보다는 호칭의 변화에만 급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언제부턴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세계화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이름을 영어로 바꾸는 CI(기업이미지통합) 개선작업이 한창이었다. 영어이름 바꾸기가 대기업에서 공기업, 이제는 행정의 최 일선인 동사무소에까지 이르는 실정이다. 이름은 얼굴이고 정체성을 명확하게 나타낸다. 우리는 지금 우리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번쯤 돌아봐야 할 때다.
사실 동사무소는 주민자치센터의 설치와 함께 내용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동사무소의 명칭을 주민센터로 바꾸고 있는 당국은 동사무소라는 이름이 그동안 준비해 온 종합적인 대국민 서비스 체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로 들고 있다.
이른바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이러한 정책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자치구는 간판에 영어표기를 의무화했고, 또 다른 자치구는 지역 이름을 ‘타운’으로 고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아예 도시 전체를 영어도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세계가 인정하는 자랑스러운 한글의 존립을 위협하는 처사다. 이렇게 해야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주민센터라는 ‘간판’보다 내용이다. 오랫동안 정겹게 써온 동사무소란 이름을 ‘주민센터’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혼란만 주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도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부스러기 영어를 남발하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대왕이 한자는 대다수의 백성들이 배워서 사용하기가 어려운 점을 안타깝게 여겨 1434년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했으니, 올해로 561년이 된다. 훈민정음은 한국문화의 독자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세계적인 언어로 꼽힌다. 세계 역사상 전제주의 사회에서 국왕이 일반백성을 위해 문자를 창안한 유례가 없을 만큼 한글은 목적과 대상이 분명하며, 그 효용성도 다른 문자와는 비교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한자는 뜻글자여서 모든 글자를 다 외워야 하지만 한글은 표음문자이므로 배우기 쉬울 뿐만 아니라 10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으로 이 세상의 온갖 소리를 표현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언어임이 분명하다. 이에 세계 언어학자들도 ‘한글은 독창성과 효율성 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며 간결한 문자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여류작가 펄벅이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극찬한 대목과 유네스코가 지난 1989년 ‘세종대왕상’을 만들어 해마다 인류의 문맹률을 낮추는데 공적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를 뽑아 상을 주고 있는 점을 들지 않아도, 우리글이 세계적으로 위대한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한글전용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세계가 지구촌이라는 개념으로 좁아지고 있는 지금,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