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윤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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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수필가, 화가, 한국문인협회 남북문학교류위원, 국제 펜클럽 회원,
한맥문학 동인회 이사, 문학과 현실 편집위원.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행복한가!
정말 편리하고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세상이 한눈에 보이고 손안에서 움직여진다. 앉아서 세상 구경을 하고, 앉아서 핸드폰만 누르면 먼 나라에 가 있는 자식들의 안부도 금세 알 수 있다.
이렇듯 최고도로 발달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들은 컴퓨터라는 기계에 정신세계를 지배당하고 말았다. 정이 넘쳐흘렀던 인간성은 어디로 가고, 보이지 않는 바보상자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악플이니 뭐니 하는 것에 안타깝게도 좌지우지되어 생을 마감하거나 낭비하는 일이 자꾸만 일어난다. 정말 편리한 것이 무기로 둔갑이 되어서 지옥을 만들고 있다.
이 아름다운 가을날, 어린 남매를 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잡초 같은 배우라고 했던 그 여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빠져서 우울증을 앓고 있다. 뒤를 이어 흉내를 낸 사람도 많다고 한다. 바보상자의 지옥 귀신에게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얼마 전 우리들을 열광하게 했던, 중국 베이징 올림픽이 생각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들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온 국민들은 우리 선수들이 선전을 할 때마다 박수와 환호로 나라 안이 뜨겁게 달아올랐었다. 나도 거기에 빠졌었다.
그 무렵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디스커버리”라는 자막 아래 작열하는 사막의 모래톱이 흘러내리기도 하고 솟구치기도 하는데, 그곳을 개미들이 줄지어 가기도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었다. 풀 한 포기 없이 불타는 듯 이글거리는 사막에 아무것도 살 것 같지 않은 그곳에도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독수리가 비상을 하다가 바위산에 앉아서 내려다보며 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마침 굴을 파고 휴식을 취하느라 졸고 있던 살쾡이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 험악한 얼굴로 고개를 쳐들고 산을 올려다보며 필사의 괴성을 지른다. 어허 흥, 어허 흥, 울부짖는다. 절대 물러설 것 같지 않던 독수리가 험악한 부리와 눈초리를 이글거리며 높이 날아가 버린다. 살쾡이는 다시 제자리로 와서 게슴츠레 눈을 가물거리다가 졸고 있다.
한편에선 생쥐 한 마리가 바위틈에서 달려 나와 말라빠진 호박 넝쿨에 호박 몇 개 달려 있는 주위를 뱅글뱅글 돌다가 호박 밑을 파고 마른 잎들을 뜯어 오물거리고 있었다. 마침 독수리와의 전쟁을 보고는 쪼르륵 구멍으로 들어갔었는데, 다시 나와서 두 손을 비비며 뭔가를 먹고 있다.
또 다른 계곡에는 사막 뱀이 철갑 같은 옷을 입고 모래톱을 썰며 춤추듯이 여우 굴을 향해 돌진한다. 여우 새끼 두 마리가 굴 앞에 나와서 놀다가 기겁을 해서 굴로 들어가 필사적으로 짖어댄다. 뱀도 온갖 몸짓을 다하며 삼키려고 하더니 포기하고 스르르 머리를 돌려 사막 위를 온몸으로 물결을 만들며 사라진다.
한쪽에는 모래 계곡 밑의 구멍 속에 온몸을 감추고 집게발 같은 집게 두 개를 내밀어서 까딱까딱 하고 있다. 그 옆으로 개미들이 무수히 들락날락거리며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그 집게를 흔드니 모래가 흔들리고 지나가던 개미가 계곡 속으로 미끄러진다. 그러면 집게를 개미에게 꽂아서 액을 다 빨아 먹어 버리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개미들만 무수히 모래톱에 빠져서 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사하라 사막의 개미지옥 굴’ 이란다.
또 다른 채널에서는 베이징의 폐막식 장면이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다. 하늘에다 대고 폭죽을 쏘아 올리고 화려한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다. 큰 탑을 쌓아 놓은 곳에 사람들이 개미처럼 붙어서 온갖 몸짓을 하고 있다. 매스게임을 하는 움직임을 보면 인간이 아니라 개미들이 움직이는 모습과 똑같이 보인다. 우주선을 타고 내려다본다면 아마도 생명체들의 사는 모습과 형태가 너무도 똑같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채널을 돌리니, 헬리콥터가 퇴각하는 군인들에게 무차별 발사를 해서 몰살을 시키고, 한쪽에서는 기아로 죽어가고, 한쪽에서는 환락과 마약으로 죽어가고, 한쪽에서는 세상이 좁다고 즐기다가 자동차가 뒤집어져서 죽고, 한쪽에서는 축제로 환희의 폭죽이 터진다.
불쑥 이상한 생각이 든다. 신의 영역까지 도전하고 파괴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께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천지 만물을 만들어 생기를 불어 넣는 순간, 모양만 다르게 만들었을 뿐 생명체의 삶과 죽음은 동일한 것을,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죽으러 가는 길인 것을 그렇게 발버둥치며 아등바등 덫에 빠져서 껍질만 남아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개미껍질이 바로 너와 나인 것이다.
도처에 깔려 있는 ‘사하라 사막의 지옥 귀신’에게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위대하신 신께서는 인간에게만은 가장 근사하고 멋지게 살 수 있도록 생각하는 이성, 특권을 주셨다. 덫에 빠져 죽지 말아야 한다.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짙어가는 가을, 창을 여니 탄산수 같은 싸한 새벽 공기가 가슴을 활짝 열게 한다. 온통 산야는 고운 색으로 물들어가고 풍요롭다. 한 발짝만 물러서서 바라보자, 이 가을 하늘이 너무도 곱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