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따이한과 신라이따이한 그리고......`
이 미서
“약속했잖아요. 돌아오겠다고, 그리고,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고, 저는 그 약속을 믿고 싶습니다.”
까무잡잡하고 유난히 눈동자가 새카만 30대 베트남 여인이 눈물로 말을 대신하고 있다. 그는 1975년 베트남 내전이 끝남과 동시에 한국으로 귀대한 참전 군인의 후손이다. 그들은 4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 긴 기다림의 끝도 모르면서 말이다. 언젠가 S 방송국에서 특집으로 기획한 ‘라이따이한의 눈물’이라는 다큐에 등장한 라이따이한의 모습이다. 베트남 여성들은 매우 아름답다. 어느 나라의 여인이 아름답지 않을까? 만은 이곳 여성들은 하늘하늘한 몸매에 풍만감이 살아 있어, 선이 매우 곱다. 칠흑같이 검고 긴 삼단 머릿결과 가무잡잡하고 탄력 있는 피부, 타민족보다 유난히 가느다란 허리선이 특히 매혹적이다. 타 동양인종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얼굴 때문인지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베트남은 신비하고도 동양의 매력을 한껏 갖춘 미인들이 사는 나라이다. 그들은 하루하루가 고생이지만, 강인함과 근면함, 아름다운 외모까지 갖췄으니 최고의 신붓감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 전쟁 당시 자세히 알 길은 없지만, 그들이 생면부지의 한국인들과 만나면서 국경을 넘은 사랑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귀한 열매도 얻었다. 전쟁종식과 더불어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난 한국인 남편들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떠나면서 했던 굳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처음 10여 년간은 국교가 단절되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발이 묶였겠지만, 지금은 자유로운 몸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내와 자식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반대로 어떤 요인으로 부부 연을 맺었건 간에 베트남 여성들은 라이따이한을 혼자 양육하며 재혼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이와 같은 운명의 사람들이 대략 10만에 이른다고 한다. 겨울 벌판의 황량함처럼 온몸에 한기가 들고 허허로움을 느낀다.
베트남과 수교한 이후로 우리나라의 대기업을 비롯해 수많은 사업가가 진출해있다. 그들 또한 매력적인 베트남 여인들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업이 어려워지거나 집안에서 인정 못 하는 결혼생활에 고민하다 본국으로 슬며시 떠난 제2의 라이따이한 아버지가 속출하고 있다. 그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라이따이한과 신 라이따이한 어미들은 자신의 고통은 사치에 가깝게 느낀다. 아이들이 받을 불이익과 상처를 어떻게 어루만져 줘야 할지가 우선이고, 아이들에게 이율배반적인 아버지의 태도를 어떻게 중화시킬지가 고통인 것이다.
급히 빠져나오느라고 처자식을 못 데리고 나왔다고 변명해보지만, 남겨진 그들은 주홍글씨의 ‘헤스터프린’의 삶보다 더 참혹한 현실과 만났고 고통의 늪을 겨우 헤엄쳐 나왔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핏줄인 그들을 찾아와야 한다. 처형이나 학살, 감옥살이 등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었으며 그나마 살던 지역을 떠나 정글 속에 몸을 숨긴 대가로 목숨을 부지한 그들이 애타게 아버지와 아버지의 나라를 잊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있다.
베트남 여행 기간에 일행 중 아내 없이 놀러 온 3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여행에는 관심이 없는지 가이드의 설명은 뒷전이고 관광버스 맨 뒷자리에 버티고 앉아서 창밖을 보거나 잠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그들은 베트남 여행의 꽃인 ‘수상인형극’ 관람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 일행이 인형극 관람하는 사이에 마사지를 요구해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라고 가이드가 말했다. 그들은 아침이 되자 스무 살이 될지 말지 한 앳된 얼굴의 베트남 여성들과 함께 나타났다. 여인들은 그들이 숙소에 들어가자 그 길로 떠났다. 그들은 마사지를 너무 받아서인지 핏기없는 허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종일 맥을 못 추고 여행 일정을 간신히 소화하는 모습이 눈물겨웠다. 그 이튿날 우리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베트남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세 남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