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하다. 어느새 매미의 무대를 밀어내고 밤의 정적을 깬다. 한적한 산 밑, 개울에 서성이는 갈대잎은 스산하고 떨어지는 도토리에 다람쥐는 분주하다. 지금쯤 해변은 텅 비어 있겠다. 벌거벗은 인파는 사라지고 한적한 분위기리라. 그 바다가 여유롭게 오라고 손짓한다.
첩첩히 에워싸인 산에서 바다로 달려간다. 유난히도 무덥던 여름의 인파는 사라졌다. 산들바람 이는 날 대천 해수욕장을 찾은 것이다.
섬을 드나드는 여객선이 마지막 들어오며 별난 사람 다 보겠단다. 태양빛이 내려 붓는 여름에 안 오고 이제 왔느냐고.
인파를 피해 한적한 해변을 걷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바다를 감상하고 싶었다. 선착장 부근에는 정박해 있는 선박과 섬에서 나온 사람들이 서둘러 돌아간다. 선선한 바람이 바다 위를 스쳐 불어도 햇살을 받은 모래알 따끈하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아내와 함께 바다를 독차지 한다. 우리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맨발로 얕은 바닷물에 들어가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바닷물의 촉감이 부드럽다. 건너 편 섬에서 노송은 우리를 향해 곁눈질한다.
모래 바닥은 들고나는 바닷물로 매끈히 다져있다. 다져진 바닥을 맨발로 걷는다. 헐떡이며 물러섰다 밀려오는 바닷물과 숨바꼭질 하며 촉촉한 해안을 맨 발로 누빈다. 출렁이는 바다와 호흡을 같이 한다.
여름 내내 빈 틈 없는 인파가 뿌리고 간 사연들이 백사장에 흩어졌겠다. 즐기러 온 사람, 피서객에 밀려 온 사람, 피로를 풀려고 온 사람, 외로움을 털어버리려 온 사람 등일 것이다.
모래알만큼이나 많이 쏟아 놓은 이야기들을 밀려오는 파도가 말끔히 청소해 준다. 갈등이나 증오 시기와 다툼도 모두 쓸어 낸다.
찾는 이 없는 외로운 바닷가. 바다는 벗을 하자고 넘실거린다. 어쩌면 외로운 바다를 만날 것 같아 이제 여기에 오지 않았나. 모든 허물을 버리고 우리도 트인 마음으로 바다를 끌어안는다.
바위에 걸터앉아 검은 바다와 속삭인다. 그래도 까만 바다는 침묵이다. 출렁이며 숨을 쉰다. 바다와 벗하면 마음도 덩달아 넓어 질 것 같다. 내 마음도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품고 따스한 교제를 하고 싶다.
해변의 밤은 고요하다. 햇빛으로 달구어진 바위가 썰렁 해 진 몸을 품어 준다. 끝없는 이야기가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른다. 옛 얼굴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오고 지나 온 세월, 가야 할 인생길도 보인다. 언젠가는 작은 물새 발자국이 생겼다 바람에 지워지고 파도에 쓸어 가듯 인생도 사라지겠지. 날아 왔다 굴러 가는 작은 낙엽도 외로움 타는 해변의 빈 마음을 달래준다. 아직 내게 남은 에너지를 무엇에 발산할까. 내 안에 남아있는 미움과 시기, 다툼들을 모두 태우고, 타 오르는 열기가 출렁이는 바다로 향한다. 고독과 아픔으로 굳어진 얼굴들, 시기와 갈등으로 지처 있는 사람들을 찾아 간다.
바다는 하나로 이어진다. 인종, 민족, 국가를 초월 하여 온 세계를 포용하고 있다. 사랑의 띠로 이어 준다.
가을 해변의 밤은 깊어간다. 아직은 바위의 열이 남아 있다. 바닷새는 지저귄다.
'남은 인생의 열로 사랑을 전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