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두꺼비, 헨젤과 그레텔을 이기다.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겨라.’
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제일 빨리 잊어버리거나 바꿔 생각하며 사는 것 같다. 은혜라는 것을 받은 사람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혜안을 넓혀가지만, 가슴속에 원한이 쌓인 사람은 페시미즘(pessimism)을 안고 사는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독서수업에 러셀에릭슨이쓴 ‘화요일의 두꺼비’라는 책을 선택한 적이 있다. 두꺼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서로운 동물로 각인되고 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두꺼비는 positive(긍정적)인 마음의 대명사로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한겨울! 한참 겨울잠에 빠져 있어야 할 두꺼비는 고모 집을 향해 나섰다가 위험에 처한 사슴쥐를 구해준다. 기쁨도 잠시 두꺼비 워턴은 올빼미의 눈에 띄어 올빼미가 사는 나무둥치 속으로 잡혀간다. 돌아오는 화요일은 바로 올빼미의 생일이었는데, 올빼미는 그날에 맞춰 잡아먹을 요량으로 두꺼비를 잡아온 것이다. 혼자 남겨진 두꺼비는 슬픔도 잠시 잊고 순간 올빼미의 집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고는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한다. 사냥을 나간 올빼미가 한밤중에 돌아오자 자기가 준비해온 도토리 차를 끓여 함께 마시자고 한다. 올빼미의 이름이 없다는 걸 알고 두꺼비는 그에게 ‘죠지’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어두울 때 시작된 둘의 이야기는 아침이 하얗게 내릴 때까지 이어졌다.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한 올빼미는 자신이 잡아먹을 먹잇감이 베푸는 친절에 어리둥절해했다.
우리가 잘 아는 동화 중에 줄거리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한스와 그레텔’이 있다. 마음 사나운 계모에게 쓰레기처럼 버림을 받은 오누이는 산속을 헤매다가 온갖 종류의 과자로 단장한 마귀할멈의 집을 만나게 된다. 달콤한 유혹은 인간세계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것처럼 그것은 어린이들을 꾀어내기 위한 도구일 뿐 운이 좋지 못한 한스는 옥에 갇히게 되고 그레텔은 집안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여서 살이 통통하게 오르면 한스를 잡아먹으려는 게 마귀할멈의 속셈인 것을 오누이는 알아챈다. 마귀할멈은 다가올 자신의 만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은 계속 한스에게 보내지만 아무리 먹어도 한스는 살이 찌지 않는다.
두꺼비와 올빼미가 도란도란 거리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한겨울 포근히 내리는 눈처럼 정겹다. 그런 와중에 두꺼비가 나름대로 자구책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지고 온 스웨터의 올을 풀어서 밧줄대행으로 탈출 계획을 세우는데 거의 막바지에 이를 때쯤 올빼미가 알아채고 눈보라 속으로 탈출도구를 던져버린다.
절망적인 상황에 도달한 올빼미 죠지의 생일날 두꺼비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슴쥐 일행이 그를 구하러 온다. 그러나 그 사슴쥐 일행의 구출작전이 아니어도 두꺼비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사냥을 나간 올빼미 조지가 쓴 편지가 바람에 날아가 두꺼비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사슴쥐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된 두꺼비는 들판에서 여우에게 공격당하는 조지를 보고 사슴쥐 일행과 힘을 합해 그를 구해낸다. 그날 올빼미가 여우에게 공격당한 이유는 사냥하려던 것이 아니다. 두꺼비가 가장 좋아하는 새빨간 노간주 열매를 구해 워턴과 함께 생일 파티를 하려고 한 것이었다.
한편, 한스와 그레텔을 잡아먹으려던 마귀할멈의 취약점은 바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을 잘 못 지핀다고 핀잔을 하는 마귀할멈에게 그레텔은 기지를 발휘하여 불 지피는 방법을 묻는다. 마귀할멈은 우쭐해 하면서 아궁이에 불을 잘 지피는 방법을 자랑하는 사이 그를 뜨거운 아궁이 속에 밀어 넣는다. 영특한 그레텔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잘 활용했다. 오빠와 마귀할멈이 숨겨둔 보물을 찾아내어 집으로 돌아온다.
사회학적인 용어 중에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인질이 인질범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에게 동조하는 비이성적인 현상을 말한다. 1973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 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엿새 동안 경찰과 대치한 사건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인질들이 범인들을 두려워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차츰 그들에게 동화되어 자신들을 구하려는 경찰들을 적대시하고 사건이 끝난 뒤에도 강도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증언을 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은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인해 인질범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며 차츰 그들에게 온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짜로 자신들을 구하려는 경찰들에게 반감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의 책을 읽다가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기도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책이 더 큰 파장을 일으킬까? 생각하다가 웃는다. 수업교재로 선택된 많은 책을 읽다 보면 대개는 마지막이 어찌어찌 되리란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 책에 매료된 까닭은 예상된 결론을 순간에 반전 시킨 데서 온 기쁨이 배가된다고 하겠다. 좀 돌아가더라도 종착역에 도착해 향기가 천천히 전해지는 이야기가 더 좋을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을 포용하기란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절제하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조금만 천천히 세상을 바라본다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나는 불이익을 당하고 나서도 그에게 긍정의 힘을 준 적이 있던가 생각해본다. 한스와 그레텔이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할머니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을까? 아무래도 난 그레텔보다 가슴을 따스하게 데워준 워턴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