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 오백 년’을 읽고
한 권의 책 속으로 들어간 거대한 나라 조선
‘만약’이라는 명사를 가정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는 잘 알고 있지만, 조선 시대에 조금만 다른 정치를 펼쳤더라면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맞이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도서출판 ‘들녘’에서 펴낸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 오백 년’을 성마르게 읽는 동안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떤 천재스러운 이가 쓴 각본의 드라마나 작품보다 조선의 정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조선왕조의 오백 년 사가 더 흥미진진할 것이다. 조선은 일반인들에게는 지극히 폐쇄적인 왕조사회였지만, 갇혀 있는 공간 속에서 매우 다이나믹(역동적)하게 움직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조선은 형제, 이복형제, 동복형제, 숙부, 친족간 상잔의 고통과 패륜을 범하고 쉼 없이 북새를 놓았다. 책 속에는 조선의 건국부터 흥망성쇠가 일목요연하게 정리 되어 있으며, 그 시대상에 맞는 걸출한 인물의 소개도 실려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연산군시대의 부패와 싸웠던 홍길동과 명종시대의 임꺽정은 3년 동안 8도의 행정을 마비시켜 놓았고,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를 펼치던 19대 숙종 때 기층민들과 협력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장길산도 만나볼 수 있다. 거기에다 조선의 가부장적인 사상에서 벗어나 섭정과 수렴청정을 했던 6명의 왕후나 대비, 대왕대비의 극명하게 다른 삶도 비교 판단할 수 있다. ‘흥청망청’이 언제부터 생겨난 말이며, ‘함흥차사’란 말의 어원을 책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 밖에도 태조(이성계)부터 마지막 조선왕조의 쓸쓸한 퇴장을 알리는 27대 순종시대까지 총 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가슴 먹먹해지는 비운의 왕 인종과 인종의 계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효의 사전적 의미를 되짚어보면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 또는 부모를 정성껏 잘 섬기는 일 ’바로 그것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가장 효심을 불사르다 아침이슬처럼 사라진 왕은 아마도 인종(조선의 12대 왕)일 것이다. 인종은 중종의 두 번째 계비인 장경왕후(임금의 후처) 윤씨에게서 태어났다.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7일 만에 죽었기 때문에 새엄마인 문정왕후 윤씨의 손에 자라게 되었다. 학문을 좋아하며 별빛 같은 총명함을 지닌 인종은 중종이 죽자 30세의 나이로 왕위를 이었다. 그러나 계모(모후) 문정왕후의 그악스러움에 눌려 길지 않았던 왕위를 눈물로 지켜나갔다. 인종이 세자로 있을 때 문정왕후는 몇 번이나 인종을 죽이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자와 빈궁이 잠들어 있는데 주위에서 뜨거운 열기가 번져 일어나보니 동궁이 불에 타고 있었다. 쥐의 꼬리에 화선(불이 번지는 종이)을 매달아 동궁으로 누군가 들여보낸 것이다. 그는 당황했으나 누가 불을 지른 것인지를 감지하고 그대로 타죽을 결심이었는데, 밖에서 아버지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세자 내외는 생각을 바꾼 것이다. 비록 계모이기는 하나 자신이 그토록 따르던 어머니의 뜻이니 죽어 드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여겼으나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또한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불효와 불충을 저지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몇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후 30세가 되어서야 왕의 보좌에 올랐으나 인종은 미처 가슴속에 품은 뜻을 펼쳐보기도 전에 왕이 된 지 9개월 만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인종이 급살스럽게 목숨을 잃은 이유는 문정왕후의 마지막까지 활활 타오르던 광기로 인함이었다. 문정왕후는 자신이 낳은 친아들(경원군)과 인종의 나이 차가 스무 살이나 됐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되는 길은 인종이 사라지는 것뿐이었으리라. 문정왕후와 달리 인종은 비록 계모였지만 자신의 어미로 알고 늘 극진히 대하였다. 햇살이 유난히도 따스하던 날! 인종을 부른 문정왕후는 평소와 달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인종을 대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웃는 낯으로 자신을 대하는 어머니가 고마워 독이든 떡을 내미는 것도 알고 받아먹었다. 인종은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효성이 부족한 자신을 개탄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던 차 문정왕후의 바람대로 해주었다.
조선왕조 500년을 면면이 살펴보면 슬프지 않고 마음 쓰리지 않는 시대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고스란히 이상과 현실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룬 나라였다는 것을 실감한다. 역사는 흘러가고 기록은 살아남은 자와 승자의 몫이기에 여기에 나와 있는 책 내용이 100퍼센트 고증을 거쳤다고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 개인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가족의 역사이며 나라의 역사인 것이다. 내 나라 근본 뿌리를 모르고서야 자신의 존재 가치도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언제부터인가 교과목에서 역사가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다. 어떠한 사회 현상을 역사적 관점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악하고, 그 변화 과정에 주체적으로 관계를 맺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지녀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은 우리가 쉽게 단정하듯이 지극히 폐쇄적이고 고리타분한 그런 사회가 아니라 대단한 정열과 무게가 내재되어 있는 깊이 있는 세계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 박영규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