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시황제는 트리갭의 샘물을 마셨을까
나탈리 배비트의 ‘트리갭의 샘물’을 읽고
트리갭의 샘물이라는 말만 들어도 아득해지면서 마음 한켠 미묘한 파장이 인다. 아름다움, 슬픔, 존엄성, 두려움, 세상에 있는 감정들을 모조리 쏟아 부은 이 책은 미국 도서관협회에서 주는 뉴베리 상을 받지 못했지만, 안데르센 상을 받았으며 평론가들에게 넘치는 찬사를 받았다. 터크(지쳐 있다)가족이 ‘트리갭의 샘물’을 마시고 영원히 살게 된 순간부터 문제점은 그들이 한 번도 영원한 삶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만리장성, 진나라 최초의 중국통일, 분서갱유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진나라의 시황제는 부귀영화를 영원히 연장하고자 동남동녀 수천 명에게 황금과 진귀한 보물을 보내 신선과 불로초를 찾아보도록 파견했었다.
외부와 철저히 통제된 삶을 살아가는 위니(이기다)에게 친구는 오직 두꺼비뿐이다. 위니는 부모님 몰래 숲에 갔다가 맑은 눈동자를 가진 제시라는 소년을 만난다. 샘물을 마시는 순수한 청년 제시를 본 순간, 위니는 두근거림을 느낀다. 위니가 목말라하며 샘물을 마시려고 하자 제시는 극구 말린다. 그 와중에 제시의 어머니(매) 와 형(마일스)이 온다. 매는 목이 마르다며 떼를 쓰는 위니에게 자신들이 물을 줄 수 없는 피치 못 할 사정을 들려준다. 터크씨 가족은 87년 전 우연히 이 숲을 지나게 되었고 트리갭 숲 속에 있는 샘물을 마시게 되었는데, 그 후로 더이상 늙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죽음도 그들에게는 예외라는 말을 듣게 된다. 위니가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려 보내려 하는 터크씨 가족의 의도와 달리 이 모든 과정을 노란 옷의 남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위니네 집으로 가서 위니의 행방을 알려주는 조건으로 트리갭의 숲을 넘겨받기로 한다. 노란 옷의 남자는 마을의 치안 관과 함께 터크 가족의 집으로 향한다. 치안관보다 빨리 터크씨네 집에 도착한 노란 옷의 남자는 터크 가족에게 샘물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면 터크씨네 가족에게도 그 몫을 나눠준다고 제안한다. 자신들은 87년 동안 샘물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수고도 피하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에 여러 번 닿았으나 세상의 어떤 무기나 사고도 그들이 그렇게 원하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용납해주지 않았다. 샘물의 정체를 사람들이 알게 된 후 닥칠 혼돈과 재앙을 염려해 그들은 계속해서 집시생활을 하다가 10년에 한 번씩 가족과 만났다. 터크 가족은 흥분했고, 노란옷의 남자는 총으로 얻어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매는 교도소에 갇히게 되고, 목공 일을 했던 큰아들 마일스는 교도소 창을 떼어내 매를 구출할 계획을 세운다. 제시가 위니 집에 찾아와 탈출계획을 들려주자 자신을 가족과 같이 대해준 제시 가족에게 위니는 보은을 결심한다. 터크 가족이 멀리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매 대신 감방 안에서 이불을 쓰고 밤을 지새운다. 처형대 앞에서 총알이 매의 심장을 관통하고 나서도 아무 일 없다면, 그래서 샘물의 실체가 밝혀져 사람들이 트리갭의 숲으로 달려간다면, 혹시 탈출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chaos(혼돈) 상황이 발생된다는 가정을 떠올린 위니는 몸서리를 쳤다. 감방 안에 있던 위니는 아침에 치안관에게 발견되었으나 나이가 어려 처벌 없이 다시 부모님의 보호 아래로 들어갔다. 교도소를 탈출한 터크 가족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트리갭으로 돌아와서 한 사람의 행방을 애타게 찾아 헤맸다. 그러다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한 사람의 묘지였다. 그 묘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이자 한 아들의 어머니인 위니의 묘’ 그들은 묘비명을 발견한 후 다시 떠난다. 위니의 샘물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부터 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으므로 누구도 실망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터크 가족이 다른 도시를 향해 떠나려고 할 때 마차 바퀴 밑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두꺼비가 보였다.
“저 두꺼비도 우리처럼 죽음이 두렵지 않는 모양이지?” 라며 의아해했다. 터크 가족이 교도소 창살을 뜯고 탈출하기 전날 제시는 위니를 찾아와 샘물 한 병 건넨다.
“넌 나랑 동갑이 되는 육 년 뒤, 열 일곱 살에 이 샘물을 마시면 어때? 결혼을 하고 나랑 떠나는 거야!”
“세상 곳곳을 구경하고 영원토록 재미나게 사는 거야. 우리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열일곱 살이 되는거야! 어떻게든 우리가 간 방향을 남겨둘 테니까!” 늘 동물들에게 공격받고 목숨이 위태로웠던 유일한 친구 두꺼비에게 영리한 위니는 제시로부터 받은 그 귀중한 트리갭의 샘물을 아낌없이 주었던 것이다.
인간은 기쁘고 행복할 때가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바라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어서 빨리 지나가 주기를 바란다. 시황제의 지시대로 천하를 떠돌던 신하들은 진귀한 음식을 진상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자 서복이라는 신하가 동양에 불로초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며 제주도 떠났고,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라는 글귀를 새겨 놓고 서쪽으로 돌아갔는데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신하가 불로초라는 음식을 가져왔다. 시황제는 맛을 보자 그 즉시 기운이 솟고 활기가 찼으며 얼굴이 어려 보이는 등 효과가 있었다. 그러자 그것을 탄 물에서 목욕하고 먹으며 지냈는데, 그것의 정체는 수은이었다. 그가 만약 트리갭의 샘물을 만났더라면 과연 주저 없이 마셨을까? 시황제는 죽었지만, 불로초처럼 영원토록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한 이래 가장 잘한 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죽음을 부여한 것이 아닐는지, 우주질서와 섭리를 거스르는 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 아닐는지 생각해본다. 인간 개개인에게 수명 결정권을 준다면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지 의문이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간은 온갖 희귀한 병들을 앓고 있다. 끝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삶! 자연의 모든 것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그 흐름을 떠난 생명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오늘 온 힘을 기울여 사는 것은 언젠가 그것이 끝이 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원한 내일이 있다면 오늘은 얼마나 지루할 것인가?
이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