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신화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엇갈린 사랑
“아버지와 사랑하는 남자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런 가정이 얼마나 우문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 가족과 조국을 배신한 메데이아는 용광로를 타고 흘러내리는 쇳물처럼 상상조차 못할 뜨거운 여인이다.
사랑과 정열의 화신 메데이아와 이아손의 가슴 먹먹한 사랑 이야기에 대해 감히 누구도 명명백백한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스 로마신화 속에는 작금의 우리가 상상치 못할 이야기들이 존재하며 그 흥미로움은 과거와 현재의 통로를 자유로이 넘나들도록 만들었다.
코르키스의 공주 메데이아가 선택한 것은 아버지도, 가족도, 조국도 아니었다. 그는 사랑을 얻고자 과감히도 이 모두를 그가 사랑한 이아손과 맞바꾸었다.
이아손은 이올코스(테살리아)의 왕 아이손의 아들이다. 숙부인 펠리아스는 아이손이 늙고 힘이 없자 왕위를 빼앗는다. 혈족을 모두 죽이려는 펠리아스의 음모를 알아차린 아이손은 아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케이론(그리스로마신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스승)에게 맡겨 교육시킨다. 한편, 펠리아스는 한 쪽 발에만 샌들을 신은 가문의 남자를 조심하라는 신탁을 받았다. 성인이 된 이아손은 아버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올코스로 돌아오던 중, 노파로 변신한 헤라를 만나게 된다. 노파의 부탁으로 물이 불어난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던 중 빠른 물살에 한 쪽 샌들이 강물에 떠내려간다. 이아손은 한 쪽 샌들만 신은 채 펠리아스 앞에 나타나고 신탁을 기억한 펠리아스는 그가 이아손임을 알게 된다. 펠리아스는 오래전 신탁을 떠올리며 자신의 조카를 명분 없이 죽일 수는 없었다. 펠리아스는 이아손에게 동쪽의 황무지인 '코르키스' 로 가서 '황금양피'를 가져오면 왕권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용감한 이아손은 숙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떡갈나무로 만든 아르고호를 타고 모험을 떠난다. 모험 내내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오르페우스 같은 그리스의 명장들이 그가 더 강해 질 수 있도록 힘이 돼 주었다.
이아손이 차지하려는 황금빛 양피를 소유한 나라는 번성한다는 신탁이 있었기에 코르키스의왕 아이에테스는 무시무시한 마법으로 가득 찬 숲 속에 양털을 보관하고 불면증에 걸린 용에게 지키게 하였다. 한편 코르키스의 공주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운명은 이렇게 불규칙하고 ,두서없이, 질서 없게 어느 날 문득 예견되지 않은 첫눈처럼 찾아와서 당사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아손이 황금피를 구하러 온 것을 알자 아이에테스 왕은 이아손에게 불을 내뿜는 소와 병사를 물리치면 황금빛 털을 준다고 제안하고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손에 부적을 쥐어준다. 부적의 힘으로 소와 병사 모두를 물리칠 수 있었고, 메데이아가 뿌린 마법의 약으로 인해 불면증에 걸린 용을 물리친 이아손은 그리스인들이 가장 탐내는 황금양털 마저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그러자 아이에테스 왕은 이아손과 그 부하들을 모두 제거할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마저도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조국과 아버지를 버린 메데이아는 남동생(압쉬르토스)과 함께 아르고호에 오른다. 황금양피를 빼앗기게 된 아이에테스 왕은 배를 타고 떠나는 이아손 일행을 추격한다. 아버지가 점점 간격을 좁혀오자 메데이아는 배에 동석시킨 동생을 죽여 바다에 던져 버린다. 아름다워야 할 사랑이 순간 피로 얼룩지며 이들의 사랑도 그리 행복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한다. 아들의 사체가 바다에 던져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아이에테스 왕은 추격을 포기하고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게 된다. 그 덕분에 이아손 일행을 실은 배는 코르키스를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온 이아손은 숙부 펠리아스에게 황금양피를 보여주었으나 왕위를 물려줄 뜻이 없어보였다. 화가 치민 메데이아는 펠리아스의 두 딸에게 테살리아에서 가장 늙은 양을 데려오게 하고 마법의 가루를 넣은 펄펄 끓는 물에 늙은 양을 집어넣는다. 물속에서 건진 양은 순식간에 젊은 양으로 변해있었고, 그에 놀란 두 딸은 아버지가 늙어 왕 노릇을 얼마 못할 것 같은 욕심에 끓는 물속에 아버지를 밀어 넣게 된다. 메데이아의 꾀에 넘어간 펠리아스는 펄펄 끓는 가마솥 안에서 죽게 된다. 메데이아가 탄 욕망의 전차는 거침없이 달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백성들에게 쫓김을 당하고 코린토스라는 나라를 피난처 선택한다. 아들과 딸을 낳고 살고 있는 이아손에게 이웃나라의 왕 크레온은 자신의 딸과 결혼해 달라고 제안한다. 안 그래도 자신의 뜻에 앞서 매번 악행을 저지른 메데이아에게 실증을 느낀 이아손은 왕의 제안을 받은 젊고 아름다운 공주 글라우케와 재혼하기로 결심한다. 메데이아는 남편의 이혼 요구를 들어주는 시늉을 하며 신부의 예복에 마법을 뿌려 글라우케에게 선물했고, 글라우케가 그 예복을 입는 순간 온 몸에 독이 스며들고 그 고통으로 몸부림치다가 처참하게 죽게 된다. 연적을 죽인 것만으로도 성이 차지 않은 메데이아의 복수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더욱 날카로운 증오의 칼날은 메데이아의 어린 두 자식에게까지 이어졌다.
메데이아는 정말로 사랑에 눈이 멀고, 귀가 멀고, 정신마저 멀었던 것일까? 아니면 진정한 사랑의 메신저였는지 쉽게 속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대의 우리는 대차대조표 대조하듯 문서상으로 배우자의 신상을 따져본 후 부모의 허락을 판결문처럼 여기며 혼인을 결정한다.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메데이아의 사랑 방식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현대의 우리는 누군가를 그렇게 뜨겁게 사랑해본 적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