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수필] 이조 백자
  • 얼마 전에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선배친구가 인사동 화랑에서 사진전을 하고 있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선뜻 그러마하고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언제나처럼 인사동은 각양각색 사람들의 눈길이, 진열된 상품들을 ?y고 있었다. 거리 한편에선 외국사람 셋이 금관악기를 목에 걸고 알 수 없는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너덧 사람들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연주자들은 성의를 다해 연주했다. 어딘지도 모르는 머나먼 나라에서 와 저녁노을 짙어져 가는 인사동 거리 한 귀퉁이에서 몇 푼 벌겠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고 측은했다. 더구나 그중 한 사람의 여윈 모습에서 삶의 고달픈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
    선배를 만나 화랑으로 갔다.
    산 사진전이었다. 카메라 앵글이 상당히 좋았다. 각양각색 산이 보는 이들을 자연 속으로 끓어 들이고 있었다.
    사진을 감상하고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술집으로 갔다. 술잔이 오고 가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선배친구가 상당한 재력이 있는 듯 했다. 현재는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경기도 외곽에 황토로 지은 집을 마련 해 놓고 이따금 필요 할 때만 가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부인이 가게를 하는데 그런대로 잘 된다는 말도 했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할 이야기가 아닌데 저런 말을 뭐 하러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이야기라면 나도 거들겠지만 대화 내용이 그렇다 보니 별로 할 말도 없고 해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사진은, 여유는 있고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시작을 한 모양인데 지금은 그 재미에 푹 빠졌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나는 '그건 다행이네.' 했다.
    술집을 나서자 선배친구는 자신의 집으로 가서 한잔 더 하고 가자며 끌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로 보아 따라 나섰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치 옛날 한 옥 집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창문이며 바닥, 그리고 문갑, 병풍 등이 어우러져 잘 정돈 된 한옥 안채의 분위기를 그대로 연출 해 냈다. 그 중에 문갑 위에 올려진 백자가 내 시선을 잡았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 물건 같아 보였다. 넉넉한 배부름에 단아한 자태하며 태깔이 예사롭지 않았다. 인사동에서 30년을 골동품 장사를 해 온 분을 알고 있어 이따금 귀동냥, 눈동냥으로 얻어 들은 짧은 지식으로 봐도 좋은 물건 같았다. 
    "좋은 물건 같아 보입니다." 하고 선배친구에게 말을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집 보물이죠! 이조 백자입니다." 하며 싱글벙글 했다.
    자신의 집 가보로 물려 갈 물건이라고 하면서 세월이 가면 가격이 얼마가 될지도 모른다며 저것만 보고 있으면 배가 부르고 마음이 든든해 진다고 했다.
    백자를 감상하는 맛이야 개인의 정서나 알고 있는 지식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선배친구는 아예 돈으로만 보고 즐기는 듯했다.
    그릇이란 본래 무엇인가?
    음식이나 물건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무엇인가 가득 담은 그릇 보다는 적당히 담은 그릇이 보기 좋고, 아무 것도 담지 않은 그릇은 여유가 있어 더 보기 좋다. 무엇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이지만 본래의 자태는 빈 그릇이다. 쓰임새가 우리의 마음과 비슷하다. 우리의 마음도 본래는 빈 마음이다. 그러나 이것저것 잡다한 것을 넘치도록 담고 있는 것이 마음이다. 때로는 마음의 그릇에 담은 것으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간절히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릇에 고통을 담은 자가 자신이라면 비울 수 있는 자도 자신 밖에는 없다. 스스로 비워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고려청자나 이조 백자를 놓고 감상을 하는 것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도 상처입지 않고 지켜온 고운 자태나 윤기를 보며 자신도 어지러운 세상 살아가며 그리 되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자 함이리라. 그러나 한가지 더해서 아무것도 담지 않은 소박한 여유, 그것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능력이 안 돼서 고가의 청자나 백자를 살 수 없다면 소박한 그릇 하나 올려놓고 즐긴들 무어라 할 사람은 없다. 멋스러움으로 말 한다면 후자도 뒤지지 않으리라. 대상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상을 놓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조 백자를 놓고 그 가치를 돈으로만 보고 즐기는 선배친구의 가치관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씁쓰레 했다.
  • 글쓴날 : [09-02-14 16:09]
    • 편집국 기자[news@jungnan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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