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스여성병원 제2회 출산기 공모전 수상작
토순맘의 생생 출산후기
장려상 박상미
(서울시 노원구 공릉2동 공릉군인아파트 라동)
분만 일시 2011년 6월 8일 오전 11시43분 여(이서연) 2.68kg |
“아가가 조금 늦게 나오게 할 순 없나요?”
<출산 14일 전-36주 1일차> 아가가 예정일보다 빨리 나올지 모른다는 얘길 들었다. 자궁벽이 많이 얇아졌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요즘 배 뭉침이 잦긴 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배가 단단하게 뭉치며 부풀어 올랐고, 잠 잘 때 바로 누워 자는게 숨에 벅차, 옆으로 누워 잔지 며칠 지난 거 같다. 하지만 회사에 산더미 같이 쌓인 업무가 있다는 것과 아직 인수인계를 완벽히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아가가 예정일보다 조금은 늦게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토순아. 엄마도 토순이를 빨리 보고 싶지만... 조금만 천천히 나와 주지 않을래? 엄마 일 좀 정리하고, 그동안 못 쉰거 맘껏 쉰 담에 나오면 안 될까?” 아직은 철이 덜 든 예비 엄마였다.
육아휴직과 함께 시작된 가진통
<출산 5일 전-38주 3일차> “얏호!” 야근에 야근을 거듭하던 회사생활을 끝내는 날. 기분이 날아갈듯 했다. 앞으로 1년간은 머리 아프게 컴퓨터를 마주보며 일과 씨름하는 회사를 떠나올 수 있을 테니까.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목마르게 이 날을 기다려왔다. 곧 있을 출산의 두려움과 육아의 어려움은 까마득히 모른 채... 마지막 야근을 하였다. 하지만 몰랐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는게 가진통의 시작임을.
"엄마는 공짜로 되는게 아니다?!“
<출산일 아침 10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배를 끊을 듯한 고통... 간호사님께 도저히 못 걷겠다고 하니, 내진을 봐주신다. 아프다고 우는 내게, “엄마는 공짜로 되는 거 아니에요. 힘내요!!” 라며 호흡법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가족 분만실로 옮겨졌고, 간호사님은 나와 단둘이 힘주는 연습을 하였다. 주위에서 백만년간 못본 변을 보는 느낌으로 힘을 주라고 누누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느낌이 오지 않았고, 3분 간격으로 짧아진, 배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것 같은 진통에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소리 지르면 아가가 힘들어해요”라고 간호사님께 혼나가며, 옆에서 나를 돕는 남편의 어깨를 물어뜯으며 나는 한 마리의 짐승이 되고야 말았다.
“나 죽을거 같아. 수술 시켜줘!!!” 남편의 어깨를 물다.
<출산일 아침 11시> 계속 소리 지르기를 반복. 남편은 옆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천천히 호흡하자며 나를 달랜다. 죽는 고통이 이런거구나 싶을 정도로 밀려오는 통증. 배 안에서 폭탄이 터진 듯했다. ‘이런 와중에 호흡을 하자고? 지금 누구 아이를 낳으며 내가 이 고생인데?’ 라는 생각에 남편의 어깨를 물었다. 엄마는 공짜로 되는건 아니지만, 엄마만 이런 고통을 느끼다니... 아빠는 공짜로 되는구나 싶었다.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다가 진이 빠질 무렵. 간호사님이 급히 어딘가로 호출을 하고, 드디어 의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출산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어야 의사선생님이 들어온다고 들었다. 의사선생님 뒤로 후광이 비췄으며 이제 곧 아가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힘이 다시 났다.
“진통이 있을 때 힘을 주세요” 라는 선생님의 침착한 말. 나는 순한 양이 되어, 그동안 짐승처럼 소리 질렀던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히 “끄응~~!” 힘을 주었다. 정말 항문에 수박이 걸린 느낌. 딱 세 번. 온 몸의 힘을 항문으로 밀어내니 “미끄덩~” 아가가 나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진통이 멈췄다.
천사가 내게로 왔다.
<출산일 아침 11시 43분> 세상이 달라보였던 그 순간이었다. 그 전에는 진통 때문에 울었지만, 아가가 나오고 나서는 엄마가 된 감동에 눈물이 났다. 탯줄을 자르는 남편도 감동으로 눈가에 눈물이 글썽였다. 열 달 채 안된 울 아가가 내 가슴위에 올려져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눈은 뜨지 않았지만 그 조그만 입을 움직이며 젖을 찾는 사랑스러운 울 아가. 갓 태어난 아가는 쭈글쭈글하다던데, 울 아가는 왜 이렇게 예쁠까?
그 동안 매정하게 보였던 간호사님, 얄미웠던 남편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고, 아가를 받아준 서영훈 선생님께 무엇보다 감사했다. “아가가 조그마해서 순산하신 겁니다. 회음부 꿰맬 때 아프면 말씀하세요” 친절하신 선생님. “감사해요 선생님. 우리 아가 너무 예뻐요”라는 말을 무한 반복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 뱃속에 담고 있을 때는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나와 내 남편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따뜻한 온기가 깃들어 있는 예쁜 천사가 나올 줄 상상도 못했다. 힘들게 좁은 엄마의 골반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보고, 탯줄이 잘리어진채 우는 아가를 보는 그 순간, 내가 보는 세상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부모님과 남편이 챙겨주기만 하던, 2% 부족하던 내가, 이제는 우리 아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다. 이 세상에서 내 얼굴에 침을 뱉고, 내 옷에 오줌을 싸고, 내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는게 용납되는 유일한 존재. 바로 우리 아가다. 매일 매일 잠들어있는 아가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행복함을 느끼고, 비로소 ‘엄마’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자연분만율> 내가 장스를 선택한 이유는, 자연분만율이 높기 때문이다. 진통의 절정기에서 나 죽는다며 수술해달라고 소리 지를 때, 아마도 웬만한 병원은 제왕절개 수술을 했을거 같다. “엄마, 이제 다 됐어요. 조금만 힘주면 되는데 왜 수술을 해요?! 힘내요, 힘 내!” 라며 다독여준 간호사님께 감사한다. 막판 진통을 참지 못해 제왕절개 했다면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의 소중한 딸을 안전하게 태어나게 해주어서 감사하다.
늘 해맑은 웃음으로 편안하게 태아검진을 봐주셨던 이가영 선생님, 친절하고 차분하게 아가를 받아주신 서영훈 선생님. 그리고 분만실에서 묵묵히 옆에서 진통과정을 도와주신 간호사 언니(얼굴 하얗고 안경 쓴 키 큰 어린 언니- 이름을 못 외어놔서 아쉽다. ㅜㅜ) 정말 감사합니다. 평생 잊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