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스여성병원 제2회 출산기 공모전 수상작
둘째 낳을까요
장려상 박재준
(충남 태안 원북면 반계리 233-1 한국전력사원아파트 107동)
분만 일시
2011년 5월 27일 오전 10시 49분
남 (박재준)
3.2kg |
“이제 머리가 보여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조금만 더 더 더...”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물범벅이 된 산모 얼굴 다음으로 방금 태어난 아가의 얼굴이 나오고 산모는 아기의 얼굴에 입 맞추며 감동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렇게 아기가 탄생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여초. 바로 텔레비전 속 이야기다. 나처럼 첫째를 낳는 산모는 전혀 경험이 없으므로 텔레비전 속 장면을 의존하여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드라마 속 분만 장면이 생략해버린 너무나 많은 과정들이 있어 그것만으로는 전혀 설명 될 수 없는 일들을 겪는다.
걸으세요, 걸으세요.
임신 후 만삭 때까지도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았던 나는 의사선생님께서 아기 낳을 때 많이 힘들 거라고 했다. 진료 때마다 운동을 강조하셨지만 후회해도 늦은 일. 새벽 4시 양수가 터져 바로 입원을 했다. 주사를 맞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가족분만실로 옮겼으나 시간이 지나도 진통이 잡히지 않았고 아기도 밑으로 내려올 생각을 안했다. 허리 진통이 심해진 나는 “안 되겠다”며 “제왕절개”를 외쳤고 몇 번이나 찾아가 “제발 제왕절개하게 해주세요”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수간호사님은 “자연분만이 충분히 가능한 산모가 왜 이러냐”며 걷고 또 걷게 하였다.
제발 저를 어떻게 좀 해주세요.
산통과 함께 찾아온 무서운 통증이 또 하나 있었다. 치핵으로 인해 이미 항문쪽부터 허리까지 통증이 차올랐다. 산통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야간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침대 옆 벨을 계속 누르며 간호사를 불렀다. 산통이 아닌 항문통증으로 이미 무통주사를 세 번이나 맞은 나는 제발 한번만 더 달라고 애원했고 간호사는 그럼 분만이 늦어지니 참아보라고 했다. 나는 간호사 손을 잡고 가지 말라고 죽을 것 같다고 울고불고 난리쳐보지만 초음파상으로는 여전히 아기가 나올 진통이 잡히지 않으니 이 긴 밤을 어찌해야하나 무섭기만 했다. 걱정하던 남편도 30분마다 벨을 누르는 나에게 간호사 그만 부르고 참아보자고 했다. 태아는 얼마나 힘들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구나’ 통증만큼 후회도 깊어졌다.
그분이 오셨다.
“아직이에요? 아이구 산모님 어쩌려고 이래. 자꾸 주사맞으면 진짜 진통이 안 잡혀. 조금만 참아봐. 자, 숨 쉬어 봐요. 크게 들이마셨다 내셨다. 이렇게 후. 하. 후. 하. 통증이 덜하지. 숨 쉬는데 집중해 봐요.” 밤새 앓았던 나는 아침이 되어 수간호사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모르게 힘이 솟는다. 같이 걸어주실 때에도 같이 호흡해 주실 때에도 그때만큼은 이상하게 통증이 덜해지는 느낌이었으니까. 아기는 도대체 언제 볼 수 있을까. 왠지 모를 창피함에 나오는 눈물도 도로 집어넣는다.
담당선생님께서 출근하시자마자 오셨다. 힘들었겠다며 손을 잡아주신다. “이제 곧 아기 볼 수 있을거에요. 우리 곧 분만실에서 봐요.” ‘곧’ 이라는 말에 희망이 보인다. 정말 곧 볼 수 있겠지.
이 힘으로 무얼 못할까요
드디어 분만준비가 시작되고 여전히 내 배는 위로 볼록 아기는 내려올 생각을 안하니 수간호사님의 본격적인 자세 교정이 시작된다. “자 이렇게. 화장실에 앉아있는 자세로 진통이 올때마다 힘을 주는거야. 입으로 말고 끝으로 항문끝으로 힘을 줘봐요. 자. 내려오려면 더 힘줘야해. 다시 누워봐요. 이렇게 다리 들고 다시 힘줘요.” 진통 올 때마다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한시간쯤 힘을 주고 나니 정말 별이 보인다. 이제야 아기가 내려온 것 같다며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간호사분들이 들어오신다. “힘주세요. 하나 둘 후압. 하나둘 후압. 아기 머리 보이네요. 힘주다 안주면 안돼요. 아기 머리가 걸리니 제대로 주세요. 길게. 으아악. 입으로 말고 끝으로. 자.” “아악. 악!” 아기머리가 보이고 나의 힘은 다했다.
산모가 바쁘다 바빠!
나는 지방에서 살고 있었지만 장스에서 분만한 언니의 적극적인 권유로 임신5개월째 되어 장스로 병원을 옮겼다. 언니는 장스에서 아기를 낳고 입원해 있는 동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아기를 낳고 병실로 옮기자 그 말이 더 실감이 났다. 병실은 정말 아늑했다. 햇볕도 잘 들고 인터넷과 텔레비전, 냉장고 모든 편의시설이 다 갖춰져 있었다. 게다가 수유실이나 간호사실로 왔다갔다하기에도 너무나 편했고 일정표에는 산모 회복을 돕는 서비스들로 가득했다. 또 담당선생님께서 회진을 도시며 괜찮은지도 계속 살펴봐주셨고 식사와 함께 제공되는 간식은 어찌나 맛있던지 병원에 있는 이틀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곧 병원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을 정도였다.
둘째 낳을까요?
분만한 지 일주일이 지나 담당선생님을 찾아갔다. 회음부관리를 받기 위해서였는데 출산 후 얼마 안되어 몸이 많이 힘든걸 배려해서인지 병원에서는 나같은 환자를 가장 먼저 진료를 받게 해준다.
“어때요? 괜찮아요?” “네 선생님. 정말 감사했어요. 진통하는 동안 온갖 난리를 다 피워 너무 죄송했는데...”
입원 다음 날 바쁘실텐데도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는 나에게 두 번이나 찾아와주셔서 힘을 주고 가신 김혜영 원장님을 보니 다시 한 번 우리 예쁜 아기를 만나게 해주신 은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혼자였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또 한 분의 은인이 생각나 진료를 마치고 2층 분만실로 찾아간다. 간호사분들도 단번에 나를 알아본다. 있는 동안 그 난리를 피웠으니 몰라볼 리가 없지. 수간호사님을 찾으니 다행히 안에 계신다.
“선생님,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기를 만난 게 기적같아요.” “아이고 다행이네. 그래도 그 날 생각보다 힘을 잘 줬어요. 다행이지. 둘째 낳으러 또 오세요”
“하하. 정말요? 저 또 와도 되겠어요?” 웃음이 난다. 요즘말로 하여 정말 나 같은 진상환자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텐데 말이다.
나도 언니처럼 임신한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한테 최고의 시간은 아기를 낳고 장스병원에 머물러있던 시간이었다고, 그 시간이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으며 여전히 그 시간이 그리워 둘째를 빨리 갖고 싶어진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