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의 일이었다. 동인회의 모임이 끝난 후, P선생님의 사무실을 나오다가 문 앞에 쌓여있던 돌무더기 속에서 내 마음을 끄는 돌을 하나 발견했다. 나는 “가져가도 좋으냐?”고 묻지도 않고 그것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실은, 일행이 바로 뒤따라 나오는 바람에 머뭇거리다 허락을 구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말없이 가져 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 달 모임에 그것을 제 자리에 갖다 놓은 후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리라. 그러면 무어라 말하실까. 아마 빙긋이 웃으실 것이다.
갑자기 없던 ‘돌 모으기’ 취미가 생긴 것도 아닌데 남의 돌까지 눈독을 들여 집어 왔느냐면 나도 옛 선인들처럼 사물과 사귀고 싶었기 때문이다. 벗으로의 사귐이 아니라 선생으로 삼고 싶었다. 정신이 온전하고서야 어찌 하찮은 돌을 선생 삼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벗 삼을 만한 덕이 있다면 사물이라고 해서 가릴 것이 없다는 옛 문장가가 어디 한 둘이었는가. 더구나 나는, 그분들의 지혜에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니 사물을 일러 벗이라 하기보다는 선생이라 이르는 것이 마땅하다.
돌을 내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좀 머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것은 손 안에 꼭 드는 크기이니 돌보다는 돌멩이라 해야 알맞겠다. 그 돌멩이는 크기도 앙증맞은데다 모양마저 예쁘게 생겼다. 어렸을 적에 언덕에 올라 즐겨 불던 하모니카와 꼭 닮아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라는 시처럼 나도 돌멩이를 무어라 부르고 싶었다. 없는 이름을 부를 수 없으니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제자가 선생의 이름을 지어드릴 수밖에. ‘돌모니카 선생!’ 하모니카를 닮은 돌이란 데서 착안을 해서 그리 붙였다.
돌모니카 선생, 어찌 들으면 이국풍의 이름이지만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인연이 있는 돌 하나를 선생으로 삼았으니 사제간의 사귐이 있어야겠는데 선생의 나의 대한 무관심이 문제였다.
무외삼장 앞에 혜통처럼 화로를 머리에 이고서야 심법(心法)을 전수받을 수 있을는지. 여러 날이 지나도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책상에 앉을 때마다 들여다보아도 역시 나를 모를세라한다. 다정히 말이라도 걸라치면 꽉 다문 입에 더욱 힘을 준다. 내 생각이 짧았다. 내 맘에 든다고 의중도 헤아리지 않고 덜컥 모셔 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저토록 곁을 주지 않는 돌모니카 선생이 야속해 나는 선생을 다용도실 선반에다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동안 그를 찾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리컵을 꺼내려다 무심코 돌모니카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다행이 돌모니카 선생이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도 마음이 놓이는지 팔짱을 풀고 가슴에 품고 있던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작은 새 한마리가 선생의 가슴에 안겨 있는데 어디가 아픈지 고개를 외로 꺾고 있었다. 나는, 새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으나 선생은 소리 없이 웃고만 있었다.
말 대신에 표정으로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비로소 장식장의 선반에 있던 선생을 내 책상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옆모습이며 뒷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거센 물살로 깨지고 터진 자국이 적나라하게 들어나 있었다. 나는, 언젠가 몹시 아팠을 돌모니카 선생의 상흔들을 손으로 가만가만 쓸어 보았다.
네 모서리들이 수마에 깎여 둥글둥글해 지도록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을까. 켜켜이 쌓인 지층의 단면이 가죽표지의 성서의 모서리처럼 늠연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런 내 감정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돌모니카 선생은 무슨 문제든 이성적인 숙고(熟考)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언제나 변함없는 침묵으로 말이다.
애증을 다스릴 줄 아는 가슴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돌모니카 선생을 보면 알겠다. 그 즈음에야 선생의 가르침을 이해할만한데 헤어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돌모니카 선생도 나와의 이별이 섭섭한지 한동안 내 손을 놓질 않는다. 그러면서 ‘자기 가슴에 있는 것이 아직도 새로 보이냐‘고 묻는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기하게도 그의 가슴에 있던 새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흰 구름이 한 조각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휴지 한 장의 무게보다 더 가볍게 떠 있다. 실바람이 한 번 불면 그마저도 스러져 버릴 것이다. 그렇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모든 것은 잠시 머물다가 흘러가게 마련이다. 돌모니카 선생이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가르침이다.
한 달 후에, P선생님께 돌멩이를 돌려 드리려는데 자신과는 인연이 다 한 돌이니 받지 않으시겠다고 한다. 돌모니카 선생에게도 나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