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분의 선물
대상 서민정 ‘254분의 선물’…상금 100만원 수상
“아가야... 왜 이제 온 거야? 엄마가 얼마나 기다렸다고!”
대상 서민정 |
분만 일시 2013년 4월 3일 23시 44분 성별 남 체중 3.12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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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백보다 난 산모수첩이 더 갖고 싶은데...
2번의 인공수정 실패 후 며칠 만에 나는 상담 차 다시 병원 난임클리닉을 방문했다. 선생님께서는 3차 인공수정을 할지, 시험관을 할지 결정을 하자고 말씀하셨지만, 실패를 이미 맛 본 터라 아무런 답변을 드리지 못하고 나왔다. 편안하게 앉아 2층 대기실에서 산모수첩을 들여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부부들. 나도 내가 들고 온 명품가방보다 저기 보이는 저 산모수첩이 더 갖고 싶은데...
# 두고 봐! 내가 이 병원 반드시 오고야 만다!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찾은 난임 클리닉... 이번엔 지난번에 한 검사 중 나팔관 조영술에서 보였던 혹이 문제였다. 혹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있는 것이 난소기형종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큰 병원에서 진료 보기를 권하셨다. 희망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간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내서 다시 한 번 해보자 하실 줄 알았는데, 큰 병원으로 옮겨보자 하시니 병원에서 나오는 내내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이 병원에서 아가를 만나는 일이 나에겐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거야? 이상하게 오기 아닌 오기가 생겼다. 두고 봐. 내가 조만간 이 병원 다시 올 거야. 그리고 반드시 내가 여기서 분만하고 만다!
# 왜 이제 온 거니..
대학병원을 한 달 내내 다녔다. 난소의 혹을 수술해 버리면, 혹만 제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조직도 같이 떼어지기 때문에, 시술을 먼저 하고 임신이 되면 나중에 수술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듣게 되었다. 10년 다닌 회사에 사직서를 낸 후, 신랑과 함께 체력보강을 위해 등산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저녁마다 함께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감기기운이 있어 감기약을 먹으려다 생리기간도 지난 것 같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 본 임신 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매번 매직아이처럼 뚫어져라 봐도 한 줄만 보이던 임신테스트기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오늘은 두 줄이 맞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 엄마가 되는 거에요?” “아가야... 왜 이제 온 거야? 엄마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다구...”
# 영광의 불꽃 슛 마크를 달고...
내가 꼭 온댔지? 2012년 9월 드디어 장스여성병원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엔 3층 난임클리닉이 아닌, 그토록 가고 싶었던 2층 산부인과 진료실로 향했다.
이인식 선생님에게 진료를 보고, 쿵쾅대는 아가의 심장소리도 듣고, 꼬물거리고 있는 아가의 초음파도 보게 되었다. 선생님은 “에고... 힘들게 아가를 만났구나. 축하해요. 임신 10주 됐고, 출산 예정일은 내년 4월 1일이에요” 선생님 말씀에 지금까지 힘들었던 모든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아침저녁으로 배 마사지를 하며 관리했지만 배는 논바닥 갈라지듯 시뻘건 줄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고, 튼 살들은 뻘건 마크를 남기며 점점 늘어만 갔다. 신랑에게 투덜거리며 넋두리 하고 있는데, 신랑이 뼈 있는 한마디를 툭 던진다.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마크가 아니잖아. 불꽃 슛 마크를 배에 새길 수 있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이게 다 영광인 줄 알라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나일 수 있지만, 나에겐 정말 아무나 가질 수 없던 마크인데...
# 출산예정일이 지나고...
드디어 2013년 4월 1일이 왔다. 우리에게 거짓말처럼 온 우리 아가를 만나게 되는 날... 새벽부터 설레어 잠도 설쳤지만, 임신 말기부터 있었던 가진통만 몇 번 있을 뿐 별다른 증상은 없다. 초산은 늦어질 수 있다고 했지? 느긋하게 기다려보자...
2013년 4월 3일 새벽 2시쯤 10분 간격으로 있는 통증에 눈이 떠졌고, 이슬로 추정되는 혈액이 속옷에 묻어 나오면서 출산이 임박해 옴을 느꼈지만, 잠을 이길 수 있을만한 통증은 아니었는지, 이내 다시 잠이 들었고, 눈을 떠 보니 10시였다. 에이~ 진진통이 아니었어. 가진통이 이렇게 규칙적이어도 되는 거야? 새벽에 있었던 진통에 속은 것 같아 투덜거리며 운동을 위해 옷을 입고 나섰다. 장도 볼 겸 오늘의 운동장은 마트로 정했다.
아침밥을 못 먹은 탓인지, 기름을 걸쭉하게 머금고 있는 핫도그를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발견하고는 흡입하듯 먹어치웠다. 또 감사하게도 마트 안 시식코너에 음식이 오늘따라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저절로 나오는 ‘으~윽’ 소리를 입술로 깨물고는 진열된 커피포트를 붙들고 서 있기도 하고, 패스트리 빵을 부여잡고 서 있기도 했지만, 진통이 풀리면 나름 돌아다닐 만 했다.
한 5시간쯤 걸었을까? 5~6분 간격으로 서 있지도 못 할 정도의 진통이 1분가량 지속되었다. 난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진통이 가진통인지, 아니면 진짜 진진통인지가 궁금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당직 선생님이 내진을 해보자고 하신다. “어? 아픈거 맞네. 많이 아팠겠네. 입원하자. 30%정도 진행됐다.” 짧고 굵게 답해 주시더니, 지금 바로 입원수속을 하라신다. 어? 뭐지? 내가 아픈게 진진통이 맞았었네?
# 가족분만실 입성
입원수속을 하고, 분만실로 입실하여 환의로 갈아입고, 바로 관장을 했다. 신랑과 함께 들은 출산교실에서 요즘은 신랑이 함께 할 수 있는 가족분만실을 많이들 선택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 또한 가족분만실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은은한 조명과 CD플레이어도 있고, 무엇보다 침대가 넓고 편안해 보였다. 여기라면 어떤 진통이 있을지는 몰라도 잘 이겨낼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진통은 이제 5분 간격으로 3분 간격으로 좁혀져 왔다.
# 무통천국을 맛보다
진통 오는 간격이 점점 짧아져서 힘들어 하는 찰나에 무통주사를 맡겠느냐는 질문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대답을 하고는 곧 이어 마취과 선생님이 오셔서 무통주사를 놔 주셨다. 10분 후... 눈이 맑아지고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오호라~ 이게 말로만 듣던 무통천국이로구나! 진통지옥! 무통천국! 황홀하구나~
# 양수가 터지고 시작된 타는 듯한 진통
무통천국의 기쁨과 황홀함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 허리 밑의 감각이 무뎌져서 운동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 나와 같이 노력하며 나오려는 우리 아가를 생각하니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무언가 무뎌진 다리 사이로 왈칵 쏟아져 내려옴을 느꼈다. 나는 말로만 듣던 양수가 터졌음을 알았지만, 나를 옆에서 부축하고 있던 신랑은 적잖게 놀랐는지 허둥지둥 대며 다리 사이로 흐르고 있는 핏물을 닦아주었다. 운동을 중지하고 침대로 이동했다.
1시간 30분 동안의 무통 천국을 맛 본 후라 그런지, 양수가 터진 후 온 지옥같은 진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진통의 세기, 간격 모두 짧아지면서 바싹 타들어가는 듯한 진통이 시작되었다. 그 커다랗고, 편할 것 같던 침대도 이젠 어떤 자세를 해도 불편하고 힘들어 졌다.
생리통이 심한 사람들은 알 거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고 힘든지... 그런데 아기를 낳아본 사람들은 생리통의 100배쯤 되어야 아가를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진통이 생리통의 100쯤 될까? 아.. 힘들다. 진통이 올 때 힘을 ‘끄응~’하고 줬더니 선생님은 아기 머리가 보인다고 조금만 더 힘주자고 격려해 주신다. 우리 아가 머리가 보인다고? 정말? 이제 시작이구나!
선생님이 올라오시고 함께 있던 신랑은 잠깐 나가 있게 하셨다. “힘 잘 줘서 한 번에 합시다.” 선생님의 짧지만 강한 목소리에, 그렇게 안 하면 혼날 것 같아 진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힘을 주기 시작했다.
# 우리들의 축제
힘 못 주면 혼 날 것만 같은 무서운 의사선생님이 앞에 계시고, 또 내일은 4월 4일인지라 우리 아기에게 그 날을 생일로 주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 합쳐졌는지 난 진심으로 집중해서 힘을 주고 있었다. ‘끄 ~ 응’ 잠시 후 선생님이 토닥이듯이 말씀하신다.
“자~ 이제 힘 빼세요. 힘 주지 마세요.” ‘힘을 내가 너무 많이 줬나? 힘 조절이 안 됐나? 이러다 혼나는 거 아니야?’ 하며 힘을 빼는 순간 밑으로 후루룩하며 물크덩한 것이 빠지는 듯 하더니 이내 아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앙~~~~”
“23시 44분 남자 아기입니다.” 우리 아가가 나온거야? 벌써? 나왔다고? 아~ 근데 정말 시원하다. 이 느낌이구나... 수박덩이가 빠져 나오는 것 같다던 느낌이... 아무튼 할렐루야!!!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리고 안아보고 싶었던 우리 아기 시온이가 드디어 내 품에 들어왔다.
“시온아~ 네가 시온이구나... 반가워 내가 엄마야...”
울고 있던 아가가 뚝 그치더니 양수에 불어서 잘 떠지지도 않는 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뱃속에서 자주 들어왔던 이름이라 익숙해서 그런가 바로 반응을 하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아기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밑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며 울컥했지만, 우리 가족의 이 소중한 축제의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 눈만 끔뻑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우리 시온이를 향해 활짝 웃어주었다.
태반이 나온 후 후 처치를 해주시면서 그 무서웠던 의사선생님이 내게 칭찬을 해 주신다.
“잘 했어요! 초산치고는 한 번에 힘도 잘 주고, 산모들 중 오늘 가장 늦게 들어와서 제일 먼저 나가네~ 축하해요.”
무섭던 저 선생님께 칭찬을 받다니... 초등학교 때 공책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건강한 우리 아들 시온이를 만났다. 그 고통속에서도 소리 한번 지르고 않고 잘 참았지만, 정말 눈물나게 힘들었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졌던 4시간 14분 그 고통의 시간을 통해 우리 아들 시온이를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난 며칠 전 9월 달력을 뜯고 10월의 달력을 열었지만, 지금도 가끔 내가 4월 어디 즈음엔가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인생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며 제2의 인생을 선물해준 4월 3일의 그 생생했던 254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