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스여성병원 제3회 출산기 공모전 수상작
행복한 아들 클로버
우수상 김수민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주공아파트 1102동 1702호)
분만 일시 2013년 4월 11일 성별 남 체중 3.6kg |
2012년 4월 결혼을 하고 달콤한 신혼생활에 빠져있던 나는 신랑과의 10년 연애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임신계획은 없었다. 못해도 1년은 신혼 생활할거야! 라고 호언장담했던 나였다. 활동적인 나는 신랑과 함께 달콤한 신혼생활에 빠져 주말엔 데이트에 여념이 없었다. 한참 더웠던 7월 신랑, 친구들과 함께 양수리 자전거 라이딩을 계획하고 땡볕에 열심히 내달렸다. 살인적인 날씨에 점점 지쳐갔다. 그래도 깡다구가 있는 나인데 그날따라 몸이 자꾸만 쳐짐을 느꼈다. 결국은 목적지 1km를 앞두고 뻗어버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씻고 자려는데 엄마의 전화 한 통... 태몽인거 같다고... 소식 없냐고... 엄마로서는 큰딸이고 첫손자를 빨리 보고 싶어 하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자꾸만 신경이 쓰인 나는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약국에 들러 임신 테스트기를 구입했다. 두 줄... 정확한 두 줄이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앞섰다.
임신 2주차입니다. 아직 아기집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안정 또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나는 기쁘지 않았다. 이렇게 계획도 없이 쉽게 가져지는 아기를 왜들 다 갖기 힘들다는 건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신랑과 통화했음에도 임신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자꾸만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아이가 생기면 내 시간은 없어지는데, 내 날씬한 몸매는 망가질 텐데, 이러한 이기적인 생각들뿐이었다.
퇴근 후 신랑에게 털어놓았다. 나와 달리 두 팔 벌려 나를 꽉 껴안아 온 몸으로 기쁨을 표출했다. 내 기분은 생각도 않고 서운해져서 울컥... 결국은 눈물 폭발... 당신을 원망한다고 난 아직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다음날 신랑과 함께 구리장스병원을 찾았다. 뭔가 모를 쑥스러움과 창피함에 여자 선생님께 진료 받기로 결정하고 이가영 원장님께 진료를 받았다. 회사 앞 산부인과에서 진료 받았던 내용과 동일했다. 받아들이고 나니 새 생명이 내 뱃속에 잉태하고 있음에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너무 신기했다. 다음 진료일을 예약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내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나만 생각한 못난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미안함이 밀려와 차를 갓길에 세우고 펑펑 울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연신 소리 내며 아이에게 말하고 있었다.
#2. 고통의 순간들…
다른 엄마들과 다르게 열심히 회사생활을 했다. 만삭까지도 운전을 하고 회사를 다니며 태교에 힘쓸 겨를도 없이 일에 찌들어서 집에 오면 밥 먹고 잠들기 일쑤였고 출퇴근시 듣는 클래식 음악이 내 태교의 전부였다. 참 아이에게 무색한 엄마임을 느끼면서도 행동으로는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신랑과 함께 하면서 여러 추억도 눈에 담고 행복감이 아들에겐 큰 태교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남자든 여자든 지금은 너무 예쁜데도 그땐 왜 하필이면 남자아이야...라는 실망감에 태어나도 해주지 못할 머리핀을 그렇게 만들어댔다. 정말 성질이 못돼먹은 엄마로 지금 생각하니 우리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뒤늦은 후회로 머리핀 만들기를 그만두고 손싸개와 발싸개를 열심히 만들어댔다. 바느질엔 소질없는 나인데,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웃기다며 신랑은 동영상을 찍어놓기도 했다. 아들을 위해 뭔가 만들고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이제는 빨리 만나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의 임신기간은 늘 좌불안석이었다. 그동안 우리 아들에겐 정말 미안한 일 뿐이었구나. 글을 쓰면서 반성을 하게 되는 시간이 될 줄이야...
출산휴가를 내고 출산 일주일을 남겨두고 집에서 쉬게 되었다. 예정일보다 하루 앞선 4월 9일 유도분만으로 입원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자궁문도 겨우 2센티 열렸다고 하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악 소리가 절로 나는 고통의 시작... 남편을 때리기도 하고 매달리며 사정도 해보고 호통도 쳐보고 벽도 쳐보는 고통의 순간이었다. 옆에서 날 안타깝게 지켜보는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를 이렇게 힘들게 출산해서 키웠을 생각을 하니 철든 아이처럼 엄마 손을 잡고 힘을 냈다. 그래도 우리 아들 황금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진통을 하고 선생님께서는 밤에는 쉬자고 내일 아침 더 힘을 내보자고 하셨다. 잠이 오지 않았다. 열달동안 이기적인 엄마 뱃속에서 잘 버텨준 아들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내일 다시 시작해야 하는 무서움에 쉽게 잠을 들지 못했다. 자궁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양수는 터지고야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이가 옆으로 누워서 내려온다고 힘들게 참아줬는데 더 이상은 위험해서 안된다고 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를 생각해서 아들을 생각해서 꼭 자연분만하고 싶었는데 안된다고 하니 너무나 속상했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울며 말했다. 더 참아낼 수 있다고 더 해보겠다고... 신랑이 날 설득했다. 제왕절개 분만율이 낮은 장스에서 제왕절개를 권하는 건 그만큼 위험한 거라고, 고집 부리지 말고 수술하자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남편인 본인이 알아주면 되는거라고 나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자연분만, 나에겐 그냥 훈장같은 느낌이었다. 꼭 따야만 하는 자격증과 같은... 하지만 건강한 황금이를 만나기 위해서 나는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수술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울음소리가 귓가에 가까워지면서 내 옆에 아들 황금이가 울고 있었다. 건강하다고 말해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긴장이 풀려 잠시 넋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괜찮아?”라는 신랑의 목소리였다. 얼마나 듣고 싶고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탯줄을 자르기전 나에게 먼저와 내손을 꼭 잡아주었다.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지금 생각하면 나보다 쑥스러움이 많은 신랑이 간호사와 선생님이 있는 자리에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웃음이 난다. 아들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3일간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2013년 4월 11일 11시 11분 3.6kg으로 건강하게 운명처럼 엄마, 아빠 곁으로 와준 아들 사랑해 그리고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해.
#3. 엄마라는 이름
출산 후의 고통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고통을 이겨낼수록 나는 더욱 강해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알람시계처럼 찾아오는 아들의 젖먹이기, 혹여나 뼈라도 부서질까 조심히 안다보니 내 몸은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도 난 안 그럴줄 알았는데 내 자식이라 그런지 예쁘고 신기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 그 자체였다.
처음엔 많이 원망했다. 왜 하필 지금이냐고 엄마는 더 즐기고 싶다고, 아빠와 더 달콤한 신혼을 즐기고 싶다고... 했던 나였다. 이런 내가 엄마 자격이나 있는 건지 아들을 안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내가 그리도 내치려고 했었는지 이해할 수 없음에 말이다.
경준이를 출산하면서 부모님의 사랑의 대해 알게 되었고 부모님의 희생이 그만큼 값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빠 없이 나와 동생들을 키워낸 엄마가 너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우리 부모님이 내게 했던 것처럼 끊임없는 큰 사랑을 줄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줄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다 여겼던 철없고 이기적인 나를 변화시켜 준 소중한 아들...
장스병원은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들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그것도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예쁜 아이로 말이다. 지금 무한대로 받고 있는 사랑 변함없도록 엄마가 지켜줄게. 네잎클로버의 꽃말 행운처럼 엄마곁으로 온 경준이가 나에겐 행운이자 행복이다.
나는 엄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고 멋진 엄마로 널 지켜줄게~ 아들은 건강하고 지혜로운 아이로 사랑 베풀 줄 아는 세상에서 행복한 아들로 자라주길 바란다. 세상에서 제일 값진 보물을 얻고 그 보물을 바라보며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수민이가 아닌 경준엄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