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스여성병원 제3회 출산기 공모전 수상작
분만 일시 2013년 9월 9일 오후 5시29분 성별 김윤지(여) 체중 3.72kg |
몇 번의 유산과 갑상선 질환으로 임신을 포기하고 있던 2010년 겨울 어느 날 나에게 아주 귀한 선물이 왔다. 이번만은 귀한 선물을 10달동안 잘 키우기 위해 집 근처의 좋은 잘 하는 산부인과 병원을 수소문하다 갑상선클리닉센터도 있는 장스여성병원을 알게 되면서 장스여성병원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당시 김혜영 원장님과 이가영 과장님께서 진료를 해주셨는데 두 분 모두 내가 궁금해 하고 나의 상황들을 잘 이해하시고 아기 상태와 그때그때 상황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주시면서 선물을 10달동안 잘 품게 도와주셨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장스병원에서 모든 진료를 보고 있었다. 나는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갑상선 클리닉센터, 신랑은 고혈압 진료를 했다.
2010년 10월 13일 새벽 3시 50분경 자면서 뭔가 흐르는 느낌에 잠에서 깬 나는 바로 화장실로 가서 흐린 물의 정체를 알기 위해 코를 킁킁거리고 양도 체크하면서 나름 분석을 해보고 소변은 아닌 것 같아 책에서 많이 읽었던 양수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곤히 잠든 신랑을 깨워 미리 준비해두었던 출산 가방을 들고 야간분만을 하고 있는 장스병원으로 갔다.
당직 선생님께서 진료를 하시고는 양수가 맞다고 하시면서 분만 준비를 하자고 하셨다.
묘한 생각들이 교차했고 나도 엄마의 고통속에 태어났고 내가 태어남으로써 기뻐했던 나의 가족들을 떠올리며 감사와 고마움이 묻어났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생각에 혼자 만족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으쓱해졌다.
분만실과 대기실을 죽어라 걷고 또 걸어서 자고 일어난지 1시간 반만에 참기 힘든 통증과 뭔가 밑으로 많이 내려온 느낌에 침대에 누웠는데 신랑이 그때 뭔가를 보고 급히 선생님을 모시러 갔고 몇분뒤 하늘이 진짜 한번 노래지고 한번의 끙~~~~으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나의 천사가 세상으로 나왔다. 그때의 감동과 설렘은 연애할 때의 설렘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기쁨이었고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뭔가 이루었다는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아주 큰 희열과 뭔가 중요한 책임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내가 첫 아이를 낳으면서 다른 분만실의 엄마들을 봤는데 한 엄마는 아기가 4킬로여서 너무나 고통스러워 해서 친정엄마가 제왕절개해달라고 간청을 하는데도 간호사 및 의사 선생님들은 자연분만 할 수 있는데 친정어머님 그러시지 마시라며 오히려 보호자들을 안심시키고 진정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장스병원이 서울시 자연분만률 최고라는 것에 다시한번 감탄하였다. 입원실도 깔끔하고 밥도 맛이 있어서 모든 것이 좋았고 무엇보다 의료진들이 믿을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첫 아이를 낳고 3년뒤...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는데, 중랑구에서 서초구로 이사를 하게 되어 장스병원은 거리상 멀어서 매번 갈수가 없어서 회사에서 가까운 가락동의 모 산부인과를 알게 되어 임신내내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병원에 걸린 신문 기사에는 이 병원 또한 자연분만률이 높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 병원에서 첫 아이를 2.7킬로로 낳아서 둘째를 자연분만으로 낳을 수 있는 한계가 3.7킬로정도라고 한다. 그 이상이 되면 부득이하게 제왕절개를 할 수 밖에 없다는데 청천벽력 같았다. 첫째를 자연분만으로 낳았는데 둘째를 제왕절개 수술을 하라고 하니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 갈 때마다 잘 할 수 있다는 격려를 하던 장스병원과 달리 수술을 권하는 의사선생님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37주 정기검진을 갔는데 애기가 커서 제왕절개할 수도 있다고 또 말씀하시는 선생님... 고민은 더욱 커졌고 며칠 뒤 친정엄마와 신랑과 함께 장스여성병원에서 분만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37주만에 장스여성병원을 방문하여 선생님 상담을 하였고 2013년 9월 9일 유도 분만 예약을 하였다.
예약을 해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랑과 친정엄마 모두 “가길 잘했어, 마음이 편해” 하면서 발걸음 가볍게 왔고, 뭔가 가슴속에 계속 남아 있던 찝찝함들이 싸악 사라지면서 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되었다.
웬만한 거리면 임신초부터 병원을 다녔으면 좋았으련만 분만이라도 내가 편안하게 느끼고 안심할 수 있는 곳에서 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하며 더 이상 아기를 키우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하면서 기다렸다.
연어가 태어났던 곳으로 목숨을 걸고 회귀하여 알을 낳듯 나 역시 첫 아이를 낳음으로 감동 받았던 곳으로 돌아와 둘째 아이를 출산하게 된 것이었다.
둘째는 낳을 때가 가장 편하다고 선배 엄마들이 누누이 말을 하였다. 그러나 나에겐 둘째는 임신부터 출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10시경 촉진제를 맞고 장스여성병원에서만 볼 수 있는 산모행진을 시작하였다. 예약한 날은 아기 낳으러 온 산모들이 많아서 산모행진 행렬은 긴 행렬이 되었고 보호자들도 많아서 행진을 하면서 예비 산모들과 보호자들과 이런 저런 수다도 떨면서 경산 엄마로써 처음 겪을 엄마들에게 언제쯤 아프고 이럴땐 이렇더라 경험담도 얘기해주면서 언니하면서 따르는 산모도 생겼고 초산 엄마들에게 용기를 부어주면서 즐겁게 분만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분만 간호실장님께서 몇 번 내진을 하시고 자궁문이 열리긴 하는데 양수가 많아 아기가 밑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고 걱정을 하셔서 나 또한 오랜시간 진통이 없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간호실장님의 처방으로 양수를 터트리고 난 뒤 급속도로 오는 진통에 이번에는 유체이탈이 아닌 혼의 실종을 느끼면서 급심한 진통에 시달릴 때 또 무통 시술을 받았으나, 첫 아이때와 달리 무통 천국은 잠깐의 휴식을 주었고 잠시 후 말로 할 수 없는 통증이 입술까지 떨리게 만들면서 자연적으로 힘이 마구마구 들어가니 머지 않아 선생님들이 들어오시고 나의 공주님은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게 되었다.
아기 머리가 나오고 나는 힘이 빠져서 있는데 선생님께서 다급하게 “엄마! 아기 머리 걸렸다고 힘주세요, 엄마 할 수 있어요”라고 격려하셨고 있는 힘껏 다시 힘을 주어서 나의 공주님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아기가 나오고 나면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시원함과 방금전까지도 극심했던 배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편안함마저 느낄 수 있다.
이래서 출산을 자연분만이 좋다고 하나 보다 또 느끼는 순간이었다. 둘째 아이의 몸무게는 예상보다도 무거운 3.72킬로였고 정말이지 떡 두꺼비 같은 공주님이셨다. 37주 막달에 장스여성병원을 선택한 나의 연어적인 발상은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나를 엄마로 만들어준 두 아이를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도와주신 장스여성병원 장중환, 이인식, 김혜영 원장님께 감사를 드리고 모든 의료진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