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스여성병원 제3회 출산기 공모전 수상작
가장 소중한 보물같은 소율공주
분만 일시 2013년 8월 21일 성별 여 체중 3.5kg |
2011년 9월 17일 신랑 41살, 저는 37살이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영양사로 근무하면서 외부 요리강의까지 하고 있어 바쁘기도 했고 결혼에 대한 생각도 별로 없어 일하면서 여행다니면서 나이를 먹다보니 늦은 나이에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주변에서 늦은 나이에 결혼했으니 빨리 아이부터 낳으라고 했지만 사실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저로서는 신랑한테 습관처럼 아이없이 그냥 여행다니면서 여유롭게 살자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 신랑은 항상 저에게 철없는 소리한다고 했었구요... 그러는 와중에 2012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임신한 것을 알았습니다. 신랑이 좋아할 거란 생각은 했지만 맘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그다지 기쁜 마음으로 임신사실을 받아들이질 못했고 임신전과 똑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마음속에 남겨둔 다복이
하지만 그때 더 조심했었어야 했는데 서서하는 일이고 교대근무에 투잡을 하고 있던 저는 아가는 괜찮겠지 하고 안일하게 하루하루 지난 한달 뒤 3월 14일 병원 가는 날이었는데 기분이 묘하게 별로 좋지가 않았어요.. 같이 가겠다는 신랑을 회사 결근하면 안된다며 혼자가도 된다고 하고 병원에 갔는데 초음파를 보시던 의사선생님께서 아이가 심장이 멎은 거 같다면서 정밀 초음파를 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침부터 이상하게 안절부절 불안했었는데 아마 몸이 느끼고 있었나 봐요... 신랑한테 전화하면서 그 사실을 알리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아 제대로 말을 못했어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심장이 멎는 거 같은 느낌이 드네요... 직장에서 바로 조퇴하고 집으로 돌아온 신랑을 붙잡고 같이 한참을 울었습니다.. 먼저 보낸 성별도 알지 못하는 내 자식 ‘다복이’. 처음 임신한 사실을 알고 많이 기뻐하지 않았던 내 자신에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맘을 다스리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3월 16일 제 생일 아침 수술대에서 다복이를 제 마음에 신랑 맘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지요...
-행복이를 만나다
내가 준비를 해야겠구나... 다시는 이렇게 허무하게 내 아이를 보내지 말아야겠구나... 그러면서 먹는 거 조절하고 영양사 일도 서서하는 일이 많아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만난 병원이 장스산부인과였습니다. 저를 아시는 분이 제 나이와 한번 유산한 사실을 들으시고 이곳을 추천해주셨습니다. 노산에 좋은 병원이라고. 그래서 3월에 유산하고 7월 정도까지 아이가 없어 장스가서 검진받았는데 기다려 보라고 했어요. 그리고 2개월 후 12월 29일에 7주된 ‘행복이’를 만났습니다. 39살이란 적지 않는 나이에 만난 내 딸 행복이.. 그리고 말로만 듣던 주변의 수많은 경험담들을 몸소 체험하다보니 주변에 있는 아이들과 그리고 어머니들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고마워 잊을 수 없는 장스-저는 1달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았고, 임형수 과장님께 진료를 받았어요.. 사실 나이가 있어 다니다가 큰 병원으로 옮길 생각이라 지정 진료 신청을 안하고 1층에서 진료를 신청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다니다 보니 젊으시지만 궁금한 거 말씀도 잘해주시고 친절하셔서 산후조리까지 장스에서 마무리 했죠.
아이를 갖고 나서는 매순간에 울보가 됐어요... 처음 심장소리 듣던 날, 양수검사 결과 듣고 의사선생님께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한날, 입체초음파 찍던 날.. 참 많이 기뻐서 울었습니다.
저는 사실 55kg 정도 나갔었는데 유산하고 나서 잘 먹어야 한다고 해서 임신할 때는 67kg 즉 12kg정도가 불었어요...
-걷고, 또 걷고
자연분만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셨던 선생님께 엄청 감사함을 느낍니다.. 막달이 다 되었을때 주변분들이 배가 밑으로 많이 내려왔다고 8월 초에 아이가 나오겠다고 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예정일이 8월 16일이었거든요. 그래서 7월 말부터 짐을 싸놓고. 하루에 2시간씩 운동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배만 더 나오고 아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점점 두려움은 더 커져갔구요... 예정일을 넘겨 5일 지난 후에 유도분만 날을 잡아놓고 집에 왔어요...
촉진제를 맞고 관장을 하고 걸었어요... 걸어야 아이가 빨리 나온다구요.. 걷고 또 걸었어요.. 그래야 사랑하는 우리 딸을 빨리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야간에 분만 선생님께서 다시 내진하시고 배를 보시더니 아이가 큰 것 같다고.. 수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순간 그 고통을 참을수 없어 다시 무통주사를 달라고 소리쳤고.. 아니면 수술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의사선생님께서 8cm열렸는데 일단 한번 해보자고 하시더라구요.. 간호사 선생님께서.. 무통주사 놔달라는 저에게 아이낳는 것이 늦어질 수도 있다고 그냥 한번 참아보는게 어떻겠냐고, 그게 아이한테 더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걸어보자고.. 그 간호사 선생님 잊을수가 없어요.. 같이 걸어주시더라구요.. 힘주라고 옆에서 격려해 주시고... 그리곤 조금후에 들어오신 의사선생님께서 다시 내진하시더니 조금 후에도 아이가 안나오면 흡입기를 사용해야겠다 하시면서 잠시 나가셨어요.
-39살 나이에 자연분만 성공
그런데 그 잊을수 없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옆으로 오시더니 흡입기가 아가한테 안좋으니 조금 더 힘을 내보라구 옆에서 또 격려해 주시더라구요... 아가한테 안 좋다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힘이 나길 시작했어요.. 정말 그 간호사 선생님 짱입니다.. 그리고 몇 번의 힘을 주고 아이를 낳았어요. 물컹거리는 느낌, 그리고 없어지는 진통, 그리고 사랑하는 내 딸.. 행복이.. 그 때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요... 신랑은 탯줄자르고 사진찍고 아이가 제 품에 안기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고통을 어떻게 참았을까 싶은데 하루하루 다르게 커가는 내 딸 소율이를 보고있으면 그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래서 잊어버리고 둘째를 갖는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솔직히 아이를 처음 만났을때는 아이가 너무 안예뻐서 신랑도 저도 조금 실망했거든요... (건강하게만 태어났으면 했는데, 사람인지라)
저는 장스산부인과를 만나고 임형수 과장님과 그때 야간에 근무하셨던 단발머리 간호사 선생님!! 행운이었습니다... 39살의 자연분만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장스를 만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또 살짝 둘째도 낳아볼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둘째 가지면 찾아가겠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저에게 예쁜 소율공주를 건강하게 자연분만하게 도와주셔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