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보관함 이용한 신종 보이스피싱 등장
경찰·금감원 사칭…전직 교사 5770만원 피해
대포통장이 아닌 지하철 물품보관함을 이용해 거액을 가로챈 중국 보이스피싱 국내총책과 인출책이 경찰에 붙잡혔다.
7일 서울 중랑경찰서는 경찰과 금융감독원을 사칭해 피해자를 속인 뒤 577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국내 총책 조모(46)씨와 지하철 보관함에서 현금을 꺼낸 인출책 윤모(48)씨를 구속했다.
이들에게 속아 70대 전직교사는 5770만원을 직접 지하철 보관함에 집어넣었다가 피해를 당했다.
전직 교사 A(72)씨는 지난달 12일 오전 10시쯤 '경찰청 소속'이라는 남자의 전화를 받았다.
이 전화에서 남성은 "당신의 개인정보가 도용돼 수사 중에 있는데, 은행 계좌에 있는 돈이 모두 인출될 수 있다"며 "계좌에 있는 돈을 인출해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넣어두면 금융감독원 직원이 직접 돈을 꺼내 안전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알렸다.
잠시 후 금감원 소속이라는 사람이 다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돈을 넣으라고 친절히 안내했다.
불안해진 A씨는 은행으로 가 적금을 깨 마련한 현금 3000만원을 오전 10시 40분쯤 서울 중랑구 지하철 7호선 중화역 물품보관함에 넣었다.
이어 30분 뒤 마이너스 통장으로 인출한 2770만원을 다시 물품보관함에 넣었다.
처음 전화를 받은 지 불과 1시간여 만에 마이너스 통장으로 빚까지 내 가며 5770만원이라는 거액을 물품보관함에 넣었다.
A씨는 이들과 계속 전화 통화를 하며 돈을 넣은 물품보관함 번호와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오전 11시 40분쯤 이 돈을 꺼내 서울 관악구에서 기다리던 송금책에게 전달했다.
뒤늦게 사기임을 깨닫고 112에 신고한 A씨는 "경찰을 사칭하며 내 개인정보가 도용돼 수사 중이라고 하고, 잠시 후 금감원이라며 확인 전화까지 하는 바람에 깜빡 속았다"고 진술했다.
조선족인 조씨와 윤씨는 취업 비자로 국내에 들어온 뒤 범행 건당 각각 100만원과 20만원을 받았다. 이들은 중국 현지 총책의 지시에 따라 피해자로부터 받은 돈을 송금책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물품보관함에서 돈을 찾을 때 모자 달린 점퍼, 모자, 마스크까지 준비해 눈만 내놓은 채 얼굴을 가리는 한편,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면서 이동하는 등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썼다.
경찰은 "대포 통장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계좌 하나를 구하는 데 70여만원이 들기 때문에 발각될 우려도 적고 비용도 들지 않는 지하철 물품보관함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