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안재식 작가가 들려주는 '중랑의 설화
4. 민초들의 희망, 용마산 아기장수④
농부 내외가 방으로 들어가니, 아기가 일어나서 큰절을 올리며 말을 꺼냈다.
“아버지, 어머니,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저를 죽이십시오. 그래야만 저도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아기의 말을 듣고 있던 농부 내외는 방바닥을 치며 울부짖었다.
통곡소리가 조금 잦아지자, 아기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를 용마산 밑에 묻어주세요. 그리고 반드시 콩과 팥, 메밀과 겨릅대(껍질을 벗긴 삼대)를 각각 다섯 섬으로 눌러 죽여주세요. 저는 이 세상에 잘못 태어난 게 아닙니다. 곤궁에 처한 백성을 구하려고 태어난 거예요. 그러나 영웅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에서 역적으로 몰릴까 봐 자식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하는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겠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효자가 간청합니다. 저를 죽이세요. 반드시 저는 영웅호걸을 부르는 세상이 오면 다시 태어날 겁니다.”
말을 마친 아기장수는 용마산 밑으로 날아가 땅을 팠다.
아기장수의 진심어린 효심에 눈물을 흘리며, 농부 내외는 아기장수가 시키는 대로 용마산 밑에 묻어주었다.
한편 세조는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렸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질까 싶어서 그런지, 걸핏하면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을 참배하였다.
세조는 불안감을 잊기 위해 사냥도 즐겼다.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일대에서 사냥을 하려면 먼저 건원릉을 찾아 사유를 고하고, 제를 올린 후에 몰이를 해야만 했다. 세조는 이삼 일간 관군을 여러 패로 나누어 사냥을 하였다. 그러던 중 세조도 아기장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뭣이라! 날개를 단 아기장수가 있다고? 왕족을 징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면서 역적질을 한단 말이더냐. 하루빨리 역적을 잡아들여라. 어서!”
크게 노한 세조가 엄명을 내렸다.
관군들이 눈을 까뒤집고 동네방네를 훑고 다녔다. 며칠 후, 농부네 집에 관군들이 들이닥쳤다.
“이 집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났지? 역적 아기장수는 어디 있느냐?”
관군이 농부를 다그쳤다.
“태어났지요. 힘세고 명민한 아기장수가 흑흑, 하지만 모자라고 힘없는 이 아비가 죽였소! 내가 살려고 내 자식을 내 손으로 죽였단 말이오! 난 부모도 아니오, 흑흑! 어찌 부모가 되어, 흑흑.”
“부모가 자식을 죽였다고? 사실이냐?”
“자식을 죽인 일인데, 거짓을 말하겠소.”
“그럼 아기장수가 묻힌 곳을 대거라! 어디인가? 가서 눈으로 확인을 해야겠다.”
농부는 다그치는 관군들에게 아기장수의 무덤을 알려주었다.
무덤을 찾은 관군들은 아기장수의 시신을 확인하겠다고 무덤을 팠다. 봉분을 파기 시작할 때였다. 갑자기 ‘펑!’하고 무덤이 갈라졌다.
“아이고, 놀래라! 뭔 소리야?”
“저절로 무덤이 갈라지며 내는 소리야.”
관군들은 모두 놀라 땅바닥에 엎드리고 말았다.
그런데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때 벽력같은 소리가 들렸다.
“들어라! 콩은 군사가 되고, 팥은 말이 되고, 메밀은 투구가 되고, 겨릅대는 긴 창이 되어라!”
아기장수는 말안장에 걸터앉아 호령을 하고 있었다. 엎드리고 있던 관군들도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기장수가 살아 있다! 저들은 역적이다. 아기장수와 역적들을 한 명도 남기지 말고 목을 쳐라.”
“우와! 우와!”
관군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돌격하였다.
관군들과 아기장수의 군사들은 혈전을 벌였다. 하지만 무덤에서 나오자마자 싸움을 하게 된 아기장수는 성공 직전에 그만 죽고 말았다.
부모에게 한 번 죽고, 관군의 칼에 또 죽게 된 아기장수는 결국 두 번 죽은 셈이었다. 군왕 이외에 영웅은 역적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비극이었다. 결코 하늘에 해가 둘이면 안 되듯이 말이다.
그때였다. 용마산 꼭대기 장군봉에서 용마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히히힝!”
용마는 앞발을 크게 들어올리며 다시 울부짖었다. 그 뒤로 무지개가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떠 있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아기장수가 또다시 살아나 날개를 펼치며 용마산 바위로 날아오르는 게 아닌가! 마치 독수리처럼 관군 머리 위를 빙빙 돌면서 날더니, 사뿐하게 용마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로 모두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하였다.
“히히힝! 히히힝!”
용마가 다시 앞발을 들어올렸다.
“기다려라! 내가 다시 너희들을 구하러 오리라~ 꼭 다시 오리라~~~~~.”
아기장수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백성들은 땅에 엎드려 아기장수에게 절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 별천지를 반드시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용마를 탄 아기장수는 장군봉(용마봉)을 박차고 올라, 아차산 너머로 날아갔다. 아기장수를 비추던 무지개도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