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안재식 작가가 들려주는 '중랑의 설화
5. 우림주막거리, 신 장사의 순애보-2
소년은 사내의 주먹을 맞받아 막으며 다리를 들어 얼굴을 걷어찼다. 일격을 당한 덩치 큰 사내가 나둥그러지면서 피를 흘렸다.
얼떨결에 벌어진 사태를 지켜보던 덩치 큰 사내의 일행이 한꺼번에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소년이 다치는 걸 보지 못하겠다는 듯 일제히 눈을 감았다.
“얍!”
기합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더니, 곧이어 비명이 들렸다.
구경꾼들은 소년이 당한 비명이라고 여겼는지, 일제히 소년을 향해 실눈을 떴다. 그런데 구경꾼들의 실눈이 점점 동그래지면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역시 우림주막거리 신 장사야. 한 명도 아니고, 떼거리를 한 방에 눕히다니? 어린 신 장사 만세!”
신 장사라는 소년은 덩치 큰 사내의 몸에서 전대를 꺼내 소장수에게 돌려주었다.
“고맙소! 신 장사, 어찌 이 은혜를 갚아야 하나.”
“별말씀을요. 얼른 집으로 돌아가 노모님이나 치료하세요.”
장사로 태어난 어린 신씨는 재물과 세력이 약해진 양반집 도령으로 우림주막이 있는 마을에서 자랐다. 신 장사가 태어날 때, 산파를 보던 사람이 큰 몸과 팔다리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들어내지 못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고고지성(呱呱之聲)이 얼마나 컸던지, 우림주막에 머물던 소장수들이 몰려와 태어난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기까지 했었다.
“아기가 어찌나 크게 울던지, 난 산에서 호랑이가 우는 줄 알았어요.”
“난 100여 년 전에 뜻을 이루지 못한 용마산 아기장수가 다시 살아서 온 줄 알았다니까요.”
“맞아요. 용마산 아기장수 울음소리같이 들렸어요.”
태어난 아기는 용마산 아기장수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아기를 보러온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냈다.
신 장사는 소문대로 힘이 세고, 정의로운 소년으로 잘 커갔다.
소년으로 성장한 신 장사는 우림주막거리를 드나들며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어 칭송이 자자했다.
신 장사로 인해 우림주막거리는 동네방네 소문이 퍼졌다. 소문을 듣고 안전한 거래를 하기 위해 구름 떼처럼 모이는 소장수들로 주막거리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구걸하는 이도 살이 올라 통통할 정도였다.
그런 신 장사에게도 쉽사리 속마음을 꺼내지 못하고 마음을 태우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신 장사가 혼자 연모하는 대장간집 딸 금이 낭자 때문이었다. 금이 낭자를 만나려고 신 장사는 하루종일 우림주막거리를 떠나지 못했다.
오늘도 신 장사는 이글이글 타는 참나무 숯불에 쇠를 달구고 망치질로 날을 벼리는 대장간에 있었다. 대장장이 뒤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신 장사는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이었다.
“어르신, 제가 좀 할 일은 없습니까?”
대장장이는 신 장사의 말은 들은 척하지 않고 날 벼리는 망치질만 하였다.
“일 없으니 자네 볼일이나 보게.”
칼을 들어 날을 번득여보는 대장장이에게 신 장사는 안절부절못하면서 주위를 서성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대장간집 안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진지 드시고 하세요.”
연분홍 치마를 입은 금이 낭자가 소쿠리를 들고 나왔다.
낭자를 본 신 장사는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하였다. 신 장사의 볼이 발그레하게 홍시처럼 익어갔다.
“금이구나. 요즘은 밥값도 못했는데, 가지고 들어가 너나 먹으렴.”
그러나 금이 낭자는 소쿠리를 아버지에게 내밀고는 대답도 없이 집안으로 사라졌다. 신 장사는 낭자가 사라진 집 쪽을 바라보면서 한발 한발 걸음을 앞세웠다.
“자네 집은 그쪽이 아닐세.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와도 소용없네. 자네와는 인연이 아니야.”
대장장이의 말을 뒤로하고 돌아선 신 장사의 얼굴에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낭자에게 말도 걸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걷던 신 장사가 흠칫 놀랐다.
“아니, 금이 낭자 아니오?”
신 장사 앞에 진달래꽃 같은 금이 낭자가 서 있었다.
“신 장사님, 앞으로는 대장간에 오지 마세요. 아버님께서 많이 걱정하세요.”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끝낸 금이 낭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골목으로 걸어갔다.
신 장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꽃처럼 하느작거리며 걷는 낭자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용기 내어 따라가지도 못했다.
‘낭자를 연모하는 내 마음을 그리도 모른다는 말이오? 매정한 사람…….’
연모하는 낭자를 먼발치에서라도 매일 보는 것이 즐거움이었는데, 오지 말라는 말은 신 장사에게 청천벽력이었다. 그렇다고 금이 낭자의 부탁을 묵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신 장사는 더욱더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로 우림주막거리에 신 장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이걸 칼이라고 만들었나?”
험상궂은 사내가 대장장이를 두들겨 패며 망치를 들고 대장간에서 행패를 부렸다. 말리는 사람들에게도 망치를 휘두르면서 사내는 대장간의 집기를 부쉈다.
“이런 날, 신 장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아.”
“신 장사는 도대체 어디 가서 몇 년째 얼굴도 보이지 않는 거야? 이러다간 마을이 아주 쑥대밭이 되겠어.”
“금이 낭자 때문에 몸이 많이 상해 마을을 떠났다던데.”
“그나저나 저렇게 부숴버리면 대장간도 문을 닫게 생겼네. 쯧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