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소방서장ㆍ원묵초교장 관리소홀 책임 ‘직위해제’
지난 17일 일어난 원묵초등학교 사다리 굴절차 추락사고는 철제 와이어에 윤활유를 바르지 않는 등 정비 불량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감식한 결과에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중랑경찰서는 29일 “국과수 감식 결과 사다리차의 탑재함을 지탱하는 철제 와이어 자체의 마찰 및 부식으로 인해 사고 당일 와이어가 끊어진 것으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하강 중 탑재함의 수평을 유지해주는 직경 8㎜의 와이어가 윤활유 없이 장시간 작동하면서 자체 마찰을 견뎌내지 못해 끊어졌다는 설명이다.
사고가 난 고가 사다리차 와이어는 끊어진 부분 외에도 상당 부분이 이미 마모된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비록 소방규정에 없는 내용이더라도 정비 불량은 사고 책임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사고는 소방당국자들의 ‘안전의식’ 실종이 빚어낸 어이없는 ‘인재(人災)’로 결론지어졌다.
경찰은 이에 따라 지난 24일 소방훈련 현장 책임자였던 중랑소방서 안전교육팀장 이모씨(52)와 굴절차 운전을 했던 소방장 김모씨(49)를 업무상 중과실치사ㆍ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데 이어 신내안전센터장 이모씨(56)를 같은 혐의로 추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그러나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은 신청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어 구속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 사고와 관련해 현재까지는 중방소방서 서장과 원묵초등학교 교장이 현장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직위 해제됐다.
▽ ‘안전의식’ 없는 안전교육
문제는 이들 책임자와 현장 실무자 몇 명의 사법처리도 중요하지만 이번 사고를 부른 근본 원인을 찾는 데 더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소방당국이 어린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안전체험 교육을 하면서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거나 그물망을 치는 등의 안전장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데서 현장 소방대원들의 ‘안전의식’ 정도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소방당국의 ‘전시행정식’ 안전교육이 이번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사고도 서울시 소방방재본부가 관내 소방서에 “가족의 달을 맞아 안전체험 행사를 열라”고 지시한 데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소방당국이 실제 교육효과보다는 상부지시를 따르는 일회성 행사에 무게를 뒀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안전장치 없이 이처럼 반복되는 안전사고는 소방대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운동장 참사 얼마 전에도 놀이기구에 매달린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사다리차 탑재함에 탔던 소방대원 등 2명이 사다리차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떨어져 크게 다쳤다. 이때도, 추락 현장에 안전 매트 같은 건 없었다. 안전 불감 풍조에 대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는 데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학생·학부모·교사 모두 심각한 ‘트라우마’
유족들을 비롯한 사고후유증을 겪는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도 간과되어선 안 될 부분이다. 원묵초등학교의 운동장 참사 이후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와 학부모들까지도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ㆍ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6학년 어린이는 “창문을 내다보니 사람 3명이 떨어져 있었다.”며 “처음에는 마네킹인 줄 알았는데 빨간 액체가 흘러내렸다.”고 울먹였다. 사고를 목격한 학생들이 이처럼 사고 직후 트라우마 징후를 보이면서 밤잠을 못자는 등 정신적 고통이 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상담을 맡은 이상은(정신과 전문의) 학교보건진흥원 건강증진 팀장은 “대다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극복하겠지만 일부는 정기적인 정신과 상담과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한두 차례 더 상담을 해봐야 정확한 아이들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면서 “일반적으로 사건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최소 2주일에서 길게는 6개월가량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고 당일 문제의 사다리차에 올랐던 여러 학부모들이 화를 면하긴 했지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학부모 2명이 숨진 4학년 3반 담임교사를 상담한 학교보건진흥원측은 “담임교사가 사고 당시 충격에 (사고 예방을 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합쳐져 정신적 공황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 숨진 학부모 2명에 9억여 원 보상키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유족들에 대한 보상 합의가 소방당국과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방재본부는 사망한 정모(여·41)씨와 황모(여·35)씨 등 학부모 2명에게 각각 4억여 원씩 모두 9억여 원을 보상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중상을 입은 오모(여·36)씨에게도 일정액의 보상이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소방방재본부는 직원 모금을 통해 총 1억원 상당의 성금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